직장인 A씨(32)는 지난해 11월부터 가상화폐(암호화폐) 투자에 나섰다. ‘트론’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에도 200만원을 투자했다. 꼭 1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는 투자금은 40만원 정도다. A씨는 “막상 가상화폐를 실생활에 사용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일확천금의 욕심을 가졌던 내 잘못”이라고 토로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들이 줄줄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27일 오후 7시 기준 426만1000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7일의 최고가(2504만원)보다 80% 넘게 폭락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15일 700만원대가 무너진 뒤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해외 거래소에서도 4000달러 선이 무너졌다. 전날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비트코인 세금 납부를 허용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반등은 없었다.
주요 국내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그간 수천만원의 손실을 봤다는 계좌 인증글이 잇따르고 있다. 가상화폐의 상승을 기대하며 “가즈아(가자)”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한 투자자는 최근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언급했을 때 팔았어야 했다. 그때 안 팔았던 게 너무 후회된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은 이상 과열 현상을 보였다. 지난해 6월부터 반년 동안 300만원대에서 2500만원으로 치솟았다. 주요 가상화폐의 국내 거래 가격이 해외보다 50% 비싼 ‘김치 프리미엄’ 현상도 나타났다. 적잖은 투자자들이 가상화폐가 실생활에 활발하게 쓰일 것으로 예상하고 ‘쌈짓돈’을 넣었다. 금융회사 직원 박모(35)씨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이 그래서 지금 우리 생활 어디에 쓰이느냐”며 “장밋빛 전망만 많았지 실제 어떤 효용성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 발행된 가상화폐는 20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실제 수익을 창출하고 실생활에 활발히 쓰이는 가상화폐는 사실상 ‘0개’나 마찬가지다. 비트코인 결제 규모도 큰 폭으로 줄었다. 블록체인 연구 업체인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17개 주요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 업체에서 사용된 비트코인 규모는 지난해 12월 4억2700만 달러에서 지난 9월 9600만 달러로 80% 가까이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음식점 업주는 “지난해 비트코인 결제를 취급하다 잦은 오류 때문에 금방 중단했다. 요즘엔 결제를 문의하는 손님도 없다”고 말했다.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가 나오면 가상화폐는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발행된다. 가상화폐에 실제 쓰인 블록체인 기술이 어떤 효용성이 있는지 투자 전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투자자들이 블록체인의 본질보다 가상화폐의 유통·거래를 통한 수익에만 주목했고, 일부 전문가들도 이에 동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영 한국핀테크연합회 의장은 “그간 가상화폐의 극심한 시세 변동, 거래소의 대규모 해킹 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 토론은 없었고, 맹목적으로 규제를 해소해 달라는 주장만 난무했다”며 “정작 블록체인에 관한 정교한 보고서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나성원 임주언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