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로고가 살짝 보이는 가건물 앞에 쌀가마니가 줄줄이 쌓여 있다. 그 앞에 늙은 소 한 마리가 달구지를 메고 있다. 달구지 위에 가마니 하나가 남아 있다. 소가 여러 가마니를 끌고 와 그곳에 부렸을 테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거의 찾기 힘든 달구지와 가마니가 담긴 이 사진은 독일 지리학자 에카르트 데게(76)가 1974년 경기도 김포군 오정면에서 찍은 것이다.
데게는 사진 아래 이런 설명을 간단히 붙인다. “박정희정부는 농협을 설립하고 국가 쌀거래를 담당시켰다. 농협은 농부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쌀을 사들여 소비자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이런 이중곡가제는 정부가 농업 부문에 보조금을 지불하고 기초식량에 대한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70년대에 우리나라에 머물며 전국의 지리를 연구했다. 그는 어딜 가나 “코 큰 미국 사람”으로 불렸다. 데게는 2010년대까지 약 40년 동안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방문해 현지 조사를 했다. ‘독일 지리학자가 담은 한국의 도시화와 풍경’은 이 과정에서 촬영한 것 중 급격한 도시화를 잘 보여주는 사진과 인상적인 풍경 100장을 수록한 사진집이다.
경기도 부천과 경남 김해 등 일부 장소는 과거와 현대화 이후의 모습이 함께 제시된다. 우리나라의 도시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웬만한 지리 교과서의 도시화 단원과 통째 바꿔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저자는 한국의 과거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거꾸로 데게가 우리에게 70년대의 추억을 선물했다고 할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