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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소득 상한 정해 빈부격차 줄이자”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월급은 최상위 소득계층의 하루 소득에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신간 ‘최고임금’은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인 소득의 상한선을 정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픽사베이




“한국의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 모든 개인의 연소득 상한을 3억원으로 정하자. 그 이상의 소득은 100% 세금으로 거두자.” 좀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2022년 다음 대선에 출마한 한 후보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치자. 국민들은 ‘제2의 허경영’이 나왔다고 여기며 무시할까. 취업난과 주택난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이 어쩌면 열렬히 지지할지도 모른다.

신간 ‘최고임금’(The Case for Maximum Wage)은 소득에 상한을 정하는 도발적인 상상력의 가능성을 탐구한 책이다. 미국의 노동 전문 기자인 샘 피지개티는 그동안 저서 ‘탐욕과 선’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경제 불평등을 다뤄왔다. 이번 책에서 소득에 상한을 두어야 하는 이유와 그것을 실현할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는 최저임금(Minimum Wage)이란 말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다. 그럼 최고임금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임금의 최고 수준을 결정해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제도다. 저자는 “임금은 소득을 구성하는 한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임금 상한 이상이 필요하지만 대다수가 이미 ‘최저임금’이 필요한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해를 기반으로 ‘최고임금’이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최고임금은 소득 상한을 위한 모든 종류의 제한을 포괄하는 명칭이다.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선을 넘는 모든 소득에 100% 세금을 물리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이런 최고임금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독일 태생 철학자 펠릭스 애들러는 1880년 가파른 누진 소득세를 제안했다. 소득이 일정액에 도달한 뒤부터 100% 과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이 개념이 구체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다. 미국의 진보 정치인들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0만달러 이상의 모든 개인 소득에 대해 100% 과세를 요구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국의 최고 과세율은 1914년 7%에서 18년 77%까지 치솟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94%까지 껑충 뛰었다. 전쟁 후 20년 동안 미국은 최고 과세율을 90% 수준으로 유지했고, 유럽의 다른 선진국도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 이 기간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중산층이 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

저자는 이외 여러 연구를 근거로 “가파른 누진제가 한층 높은 수준의 경제 평등을 이루는 것이 증명됐다. 최고소득 도입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고임금을 도입해 최저임금과 연동시키는 방안이다. 이 책은 한 사회가 개인의 연소득에 상한을 정하고, 이 상한선을 최저임금에 연동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게 해준다.

저자는 최고임금 도입이 몽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는 2014년 CEO와 직원 간 급여비율 차이가 작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 사업 계약 입찰에서 특혜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페인 기업 몬드라곤은 CEO와 직원 간 급여 차이를 6배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직원들의 열정과 참여를 끌어올리고 있다.

장 뤽 멜랑숑 프랑스 좌파당 대표는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모든 개인 연소득의 상한을 40만유로(5억원)로 제한하는 공약을 내세워 20%에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런 도전은 스위스 이집트 영국 등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오진 않지만 2016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법안이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6년 일명 ‘살찐 고양이(Fat Cat)법’을 발의했다. 민간 대기업 임직원의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를 넘지 않도록 정한 게 골자다.

책의 부제는 ‘몽상, 그 너머를 꿈꾸는 최고임금에 관하여’. 세계 상위 1% 부자가 전 세계 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온 정책 제안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이 자주 논란이 되는 우리 사회에도 좋은 참고서임이 분명하다. 미국 중심의 전개가 다소 아쉽지만 사례가 생생하고 풍부해 잘 읽힌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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