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28일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퇴임 계획을 밝혔다. 예고에 없던 깜짝 발표였다.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으로 직원들 앞에 선 이 회장은 약 10분간 준비해 온 원고를 읽었다. 그는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코오롱 회장직을 비롯해 모든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1996년 만 40세 나이로 코오롱 회장에 오른 지 23년 만이다. 그는 자신이 퇴임해야 코오롱이 진정한 혁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불현듯 내가 걸림돌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내가 떠남으로써 우리 변화와 혁신의 빅뱅이 시작된다면 내 임무는 완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발표에 많이 놀랐지만 메시지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 회장은 주변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변하지 않는 조직 분위기를 일갈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자율주행과 커넥티드 카, 공유경제와 사물인터넷 등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면 살고, 뒤처지면 바로 도태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10년 전이나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의 각오를 다졌지만,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떠날 때를 놓치고 싶지 않듯이 여러분들도 지금이 변화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 이 순간 변화의 모멘텀을 살리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혁신과 변화를 강조했다.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의 아들 이규호(35)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는 전무로 승진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토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못 낼 거 같아 떠난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밖에서 펼쳐 보겠다”고 했다. 그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시불가실(時不可失)’이라는 사자성어로 자신의 결심을 압축했다. 자신을 ‘금수저’라고 표현한 이 회장은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겠다”고 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