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김명호] 모순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 모순(矛盾)이다. 말과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른다.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를 동시에 인정하면 그건 모순이다. 그래서 주로 논박하고 비판, 지적할 때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모순된 관계를 형용함으로써 오히려 강조하는 모순어법도 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유명한 노래 ‘침묵의 소리’라든가, ‘작은 거인’ ‘달콤한 슬픔’ ‘시원섭섭하다’ 같은 표현이다. 모순은 변화나 발전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변증법에서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 논리는 모순이 드러나면서 합(合)의 단계로 전개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탈원전을 표방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우리 기업의 수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원전 세일을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고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 정책이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고 애써 강조한다. 이미 정책은 원전 제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1년여 동안 원전 가동 중지 및 폐기 정책을 지켜본 한국의 여론이나, 안전 우려 등의 이유로 탈핵을 외치는 나라의 원전 세일을 바라보는 체코의 여론은 어떨지 궁금하다.

모순과 같은 뜻으로 당착(撞着)이 있다. 흔히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쓰는데 주로 잘못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자신의 잘못이나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다가 자가당착에 이르면 잘한 것까지도 덤터기를 쓰게 된다. 자가당착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것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부디 체코 원전 세일을 설명하면서 청와대나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스스로 하는 말의 모순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걸 말장난이라고 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