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청년이 서로를 간지럽히고 깔깔거리며 장난을 친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어 행복한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이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 리허설 현장을 최근 방문했다. 연습실에는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라 보엠’은 2012년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이래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리허설 직후 주역 미미와 로돌포 역을 각각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34)과 테너 이원종(32)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선후배 사이다. 상기된 표정의 이원종은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 다닐 때도 선배는 미모도 뛰어나고 실력도 대단해서 ‘퀸카’로 통했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 그런지 편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서로 친숙한 데다 신뢰가 있다 보니 연기 몰입도가 높다”고 했다.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라 보엠’은 성탄절 즈음 파리 뒷골목에 사는 가난한 시인과 화가의 가슴 아픈 사랑 얘기다. 감성적인 선율과 시적인 정서가 예술가들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소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극 중 ‘그대의 찬 손’ ‘오! 아름다운 아가씨’ ‘내 이름은 미미’ 등은 친숙한 아리아다.
서선영은 “함께 공부했던 후배를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연습할 때 이것저것 지적하고 농담도 한다. 연습 중에 잘못된 (악보) 페이지를 펴놓고 있으면 ‘너 엉뚱한 데 본다’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다른 파트너라면 정말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인간적인 ‘케미’를 기대해도 좋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서선영은 스위스 바젤 국립극장 주역가수로 활동하며 여러 작품을 섭렵했다. 미미 역을 두 번째로 연기하는 그는 “라 보엠을 관람할 때마다 펑펑 울었다. 돌아서서 생각할 때 더 슬픈 오페라”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서선영은 “아마 미미는 크리스마스만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맘으로 로돌포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미미가 죽기 직전 로돌포를 만나고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 만난 사람이 마지막 사랑이고, 내가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에 충실한 삶은 여한이 없는 게 아닐까”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 배우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문득 ‘나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이때 더 확고히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라 보엠’은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오페라다. 대사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2012년 한 차례 시인 로돌포 역을 맡았던 이원종은 “빵 한 조각 먹는 것을 기뻐하는 청년이 가난 때문에 연인을 떠나보내는 장면은 정말 가슴 아프다. 가사를 읽으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 손수건을 준비해야 하는 오페라”라고 했다. 이어 “그간 여러 배역을 연기하며 깊이가 생겼지만 로돌포는 감정의 극한을 오가는 인물이다.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선을 전달하는 게 숙제”라고 강조했다.
국립오페라단은 다음 달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 보엠’을 무대에 올린다.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공연이다. 지휘는 성시연이 맡는다. 성시연은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 상임지휘자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국립오페라단의 ‘시몬 보카네그라’로 호평받았던 연출가 마르코 간다니가 연출을 맡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