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지역 콘서트홀 성공 여부, 잠재 고객 양성·주민 호응이 좌우


 
통영국제음악당 객석을 교복 차림의 청소년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통영국제음악당 제공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어린이 공연을 찾은 꼬마 관객들. 부천필 제공


다양한 예술과 대중문화가 점차 영토를 확장해가는 반면 클래식 음악은 관객 확보에 있어 세계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기존 공연장들이 관객 절벽에 신음하고 있음에도 전용 콘서트홀 및 오페라극장 건립 소식이 전국에서 들려온다. 1980년대 ‘문화 인프라 확충’이라는 국가정책 아래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던 문예회관 건립 풍경이 연상될 정도다.

지난 11월 인천 송도에 개관한 콘서트 전용홀 아트센터 인천 바로 옆에는 오페라극장 신축공사 부지가 마련돼 있다. 또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전용 콘서트홀이 본격적인 착공을 앞두고 있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용 콘서트홀 건립 문제가 활발하게 재론되고 있다. 바로 지난주에는 부산시가 오페라하우스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20세기와 다른 점은 국가가 아닌 지자체 주도라는 점, 그리고 정체불명의 다목적 공간이 아닌 콘서트 및 오페라 전용홀이라는 점이다. 관객은 줄어들고 있는데 왜 전용홀은 증가하는 것일까? 지자체들은 허우대 좋은 건축물만큼 그 속을 내실 있게 채우는 데에도 관심이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지방 문예회관들의 무대 가동률이 50%를 밑돌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대답은 비관적이다. 이는 각 단체장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객을 개발하기보다 자신의 임기 내에 단편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려 들기 때문이다.

반면 통영국제음악당 대표 플로리안 림은 부임하자마자 먼저 통영의 모든 초·중·고교를 방문했다. 음대는커녕 대학도 없는 이 도시의 미래 잠재 고객으로 3만명의 청소년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섬에 있는 곳까지 32군데 초등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를 일일이 다 찾아가 교장들을 만나 음악당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설득했다. 이렇게 시작된 ‘스쿨 콘서트’는 통영음악당 무대에 초청된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본 공연 전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렉처 콘서트다. 그동안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이 등장한 이 무대에 통영 아이들은 무료로 초청받는 혜택을 누렸다. ‘스쿨 콘서트’는 계속 매진을 기록 중이고, 어린 관객들뿐만 아니라 동반 학부모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천 필 또한 지역 내 잠재관객 개발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어린이를 위한 음악 놀이터(연 2회)와 2015년부터 추가된 청소년을 위한 방과 후 음악회(연 2회)가 매번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데리고 관람할 수 있는 가족음악회는 육아 때문에 공연을 볼 수 없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다. 부천 필은 전용 콘서트홀이 완공돼 대관 비용 부담이 해소되면 이런 콘텐츠를 확대 편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런 지역 시민들을 위한 콘텐츠가 대부분 외부에서 영입한 기획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이채롭다. 공연장은 한 지역의 문화적 위용을 과시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홀을 지어도 대중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개 발에 편자에 불과하다. 현재 건립 중인 전용홀들의 성패는 번지르르한 공연장의 외면이 아니라 잠재고객 양성,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동시에 텃세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 공연기획자의 확보, 그리고 그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지역 공무원들의 협력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초창기 통영국제음악제가 낡은 시민회관만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윤이상이나 초대 음악가들의 명성보다도, 외부에서 유치한 전문 기획자와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역 공무원의 헌신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