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명 줄였다고 ‘불법체류자’,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교민사회 덮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반이민 정서가 급속히 퍼지면서 한인 교민사회도 움츠러들고 있다. 일각에선 앞으로 소수인종 추방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온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뉴욕 한인타운의 모습. 하윤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 온 반(反)이민정책 쓰나미가 미국의 한국 교민사회를 덮쳤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사회 전반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비자 갱신을 불허하거나 비자 자격을 박탈해 합법 이민자가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까딱 잘못하면 추방될 수 있다는 걱정, 한국 교민이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힘겹게 키운 교민 상권도 얼어붙고 있다.

이형석(가명·46)씨는 2012년 6월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4년 정도 국내에서 이민을 준비한 결과였다. 박봉을 쪼개 모은 돈과 퇴직금, 전세보증금 등을 탈탈 긁어모아보니 3억원이 조금 넘었다. 그는 이 돈으로 소액투자 비자인 E2 비자를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E2 비자는 미국에 사업체를 설립하거나 인수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비자다. 투자액이 많지 않아도 얻을 수 있고, 자녀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는 등 영주권자와 비슷한 혜택을 누리는 게 가능한 점이 매력적이다. 이씨는 20만 달러를 들여 뉴욕 맨해튼 인근에 네일숍을 열었다.

네일숍 시장이 이미 ‘레드오션’임에도 불구하고 근근이 버틸 만했다. 하지만 2년마다 실시되는 비자 갱신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미국 이민국은 최근 그의 E2 비자 갱신 불허 통보를 했다.

국민일보 기자와 지난달 26일 만난 이씨는 “직원 2명 가운데 한 명을 그만두게 한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미 이민국이 그가 고용 창출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외국인 자영업자를 통한 미국 내 고용 창출과 세수 확대라는 E2 비자 취지가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이씨는 “장사가 잘 됐다면 직원을 줄였겠느냐”고 울먹였다. 비자가 없어져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불법체류자로 남느냐를 고민 중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박영근(가명·34)씨도 졸지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그는 2016년 7월 미국의 한 대학에 경제학 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유학 비자인 F1 비자를 받았다. 지난해 여름 목과 어깨, 팔 쪽에 참지 못할 만큼 통증이 왔고, 병원에서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이후 대학에 휴학원서를 냈다. 박씨는 건강이 조금 회복돼 올 1월 복학 신청을 하려다 대학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민국이 F1 비자 자격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민국은 그가 휴학 기간에 불법취업을 하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지금 이민국에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결정이 날지 기약은 없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국의 박동규 변호사는 2일 “트럼프 행정부 들어 비자 심사가 지나치게 까다로워지고 있다”면서 “이민자들의 미국 체류 자격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문제를 찾아 추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뉴욕=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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