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농구(NBA) 서부컨퍼런스의 대표적 강호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올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2경기 연속 30점차 이상 대패를 당하는 등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활약했던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부상에다 수비농구 위주의 팀 컬러까지 잃으면서 좀처럼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제 집을 드나들 듯 밟았던 플레이오프 무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샌안토니오는 지난 시즌까지 무려 21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전신인 시러큐스 내셔널스 시절을 포함, 1950~1971년 이어간 2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최다 기록에 이은 역대 2위에 해당한다. 1996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기본기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짠물 수비’로 샌안토니오의 5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런데 올 시즌 샌안토니오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2일(한국시간) 현재 10승 12패(승률 0.455)를 거둬 서부컨퍼런스 15개 구단 중 14위로 처졌다.
특히 샌안토니오는 최근 2경기에서 역대급 패배를 당했다. 지난달 29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89대 128 39점차로 대패한데 이어 지난 1일 휴스턴 로키츠전에서는 105대 136으로 무릎을 꿇었다. 샌안토니오가 두 경기 연속 30점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포포비치 감독 부임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비 명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NBA 소식을 전하는 클러치포인트는 이날 “샌안토니오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20점 이상 내준 경기는 9차례에 불과했다. 올해는 무려 11경기에서 120점 이상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100번의 수비 기회에서 실점 기대치를 의미하는 수비 지표인 디펜시브 레이팅(Dfensive Rating)을 들여다보면 올 시즌 샌안토니오는 112.1(28위)로 최하위권이다. 포포비치 감독 부임 이후 수치가 가장 나쁘다.
샌안토니오는 발이 빠르고 끈질긴 수비를 잘하던 선수들이 비시즌 대거 이탈했다. 지난 7월 카와이 레너드와 대니 그린이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됐고, 카일 앤더슨은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이적했다. 이들의 공백은 올 시즌 경기에서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샌안토니오는 상대 가드진이 돌파를 할 때 거의 자동문 수준으로 길을 열어주면서 다양한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베테랑 부재로 인한 전력 공백도 커졌다. 가드 디욘테 머레이는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시즌아웃됐고, 센터 파우 가솔은 왼발 골절로 복귀가 불투명하다. 샌안토니오의 전성기를 이끈 베테랑 마누 지노빌리는 지난 8월 은퇴했고, 토니 파커는 샬럿 호네츠로 이적했다.
이에 샌안토니오는 ‘원투펀치’ 더마 드로잔과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중심으로 시즌 초를 보내고 있다. 드로잔은 경기당 평균 23.8점으로 팀 내 가장 높은 득점을 기록 중이고, 알드리지는 17.8점으로 그 뒤를 받치고 있다. 하지만 두 선수 외에 공수를 확실하게 책임질 선수를 찾지 못한 상태다.
포포비치 감독은 미국 ESP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경기 중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노력과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로잔은 “우리의 좌절감은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에서 온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샌안토니오는 3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상대로 연패 탈출에 도전한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