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눈에 봄이 가득하다(東方風來滿眼春).’
‘작은 거인’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기록을 처음 보도한 선전특구보의 1992년 3월 26일자 1면 제목이다.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방 시찰에 나선 덩샤오핑이 선전에서 동남쪽 홍콩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라고 역설했다. 덩샤오핑의 그해 1월 19~23일 선전행에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기자가 아니라 당시 선전특구보 부편집장 천시톈이 유일한 신문기자로 동행했다. 그는 2개월 뒤 덩샤오핑의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는 5일 뒤 인민일보 1면에 게재됐다. 이로써 1989년 천안문 사태 여파로 흔들리던 개혁·개방 노선에 다시 불이 댕겨졌다. ‘개혁개방 1번지’ 선전은 그렇게 지켜졌다. 당시 홍콩에서 선전으로 불었던 동풍은 이제 주강(珠江) 서쪽 지역의 발전을 재촉하고 있다.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포한 지 40년이 지난 현재 광둥성의 ‘주강 삼각주’ 일대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홍콩과 마카오, 광둥성 9개 도시를 거대한 경제권으로 통합하는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주하이에서 잠시 지하도를 거쳐 지상으로 다시 오르자 영국 가디언이 ‘현대 7대 불가사의’로 꼽은 강주아오 대교가 위용을 드러냈다. 홍콩~주하이~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는 전체 길이가 55㎞다. 해저와 인공섬 등을 뺀 해상 교량 구간은 29.6㎞, 해저터널 구간 6.7㎞다. 중국은 연결 구간까지 포함한 강주아오 대교를 ‘세계 최장 해상 대교’라고 밝히고 있다.
다리는 주하이 쪽에서 홍콩 쪽으로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중간의 인공섬이 희미하게 보일뿐 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홍콩과 마카오, 주하이 사이의 차량 이동시간은 3시간30분에서 30~40분으로 단축됐다.
아직까지 강주아오 대교는 이용객이 적어 한산한 편이다. 중국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까지 강주아오 대교 이용객은 총 179만명으로 하루 평균 6만4000명, 최대 10만 3000명을 기록했다. 다리 이용 차량은 하루 3000대 정도다. 하지만 일단 출입경 편의성 등 여건이 갖춰지면 교통량은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강주아오 대교 관리국은 “3년 내에 획기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포산, 장먼, 중산 등 광저우 서남쪽 도시들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광저우와 광역도시권으로 연결되는 포산시는 주강삼각주 서쪽의 경제·무역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로 꼽힌다. 2017년 기준 공업생산액 2조2400억 위안으로 전국 6위에 올라 있다. 포산시는 이미 광저우-포산 광역도시권 계획에 따라 지역 통합을 하고, 이를 토대로 광저우-포산-자오칭, 포산-홍콩-마카오 등 범 주강삼각주 광역경제권으로 확장하고, 더 넓게는 광둥-광시-구이저우성을 잇는 거대 경제권도 구상하고 있다.
상주인구 766만명인 포산시 당국은 민영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졌다는 점을 거론하며 외자 및 민영기업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포산시 전체 기업 가운데 90.4%가 민영기업이고,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 폭스바겐, 도요타, 버드와이저 등이 포산에 투자하고 있다.
폭스바겐 포산 공장을 가보니 첨단 자동화된 라인에서 골프와 아우디 A3 차량이 쉴 새 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공장 안에선 용접과 차체 조립 등 주요 공정을 로봇들이 처리하고 있었다. 공장 측은 현재 80% 정도인 자동화율을 100%까지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산 공장에서는 현재 1분에 1대, 하루 1200대, 1년에 60만대 정도의 차량이 생산된다. 2020년까지 연간 77만대까지 높일 계획이다. 2013년 9월 가동에 들어간 폭스바겐 포산 공장은 지난 6월 2공장 완공으로 생산량이 배로 늘었다.
포산시 당국은 에어컨 생산 회사인 즈가오(志高)를 대표적인 민영기업으로 소개했다. 즈가오는 2017년 매출 107억 위안(1조7000억원) 정도인 중견기업이다. 즈가오의 리싱하오 회장은 중국 민영기업의 애환을 두루 경험한 산 증인이다. 그는 포산시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다 28살에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했고 이후 사업을 계속 확장했다. 1994년에는 지인들과 즈가오를 설립해 현재 해외 매출이 40%를 차지하는 수출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리 회장은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었을 것”이라며 “40년 전 농사짓던 내가 지금은 대졸자 수천명에게 월급을 주고 3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인이 됐다”고 말했다.
포산시 남서쪽에 있는 장먼시도 ‘뉴 선전’을 기치로 내걸고 그동안 뒤떨어졌던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주강 삼각주 동쪽의 선전이 고속 성장할 때 서쪽의 장먼·허산·중산시 등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장먼직업기술학원의 차이융뱌오 부원장은 “홍콩과 선전의 동쪽으로는 길이 막혀 있지만 서쪽으로는 양장, 마오밍 등을 거쳐 일대일로(一帶一路) 시장으로 진출하는 길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강 삼각주 서부에는 허산산업단지, 장먼의 중국·유럽중소기업국제협력단지, 포산 뉴타운, 중국·독일산업단지 등 이름조차 헷갈리는 산업단지들이 곳곳에 조성되고 있다. 가는 곳마다 도시계획 설계도와 청사진을 내건 설명이 이어졌다. 개혁·개방 40년과 대만구 계획, 강주아오대교 개통과 맞물려 이 지역을 개조하는 거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거품이 서서히 꺼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지역에 외국기업이나 민영기업이 유치되지 않으면 ‘대만구’는 플랜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10년 뒤 주강삼각주 서안의 도시들이 어떻게 탈바꿈해 있을지 주목된다.
광저우·주하이=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