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지난 1일 5G 첫 주파수 송출에 맞춰 ‘5G 띄우기’에 나섰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와 같은 ‘통신 재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5G 사업화에 우선 돌입한 것이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장밋빛 미래 청사진이 쏟아져 나오면서 당장 돈이 안 되는 통신 안보에 대한 투자는 다시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통 3사는 일제히 5G 서비스 개시를 자축하며 핵심 기술을 뽐냈다. SK텔레콤은 스마트팩토리, KT는 인공지능(AI) 로봇, LG유플러스는 무인트랙터를 기업 간 거래(B2B) 대표 사업으로 내세웠다. 모두 십수년 안에 초연결사회에서 주역이 될 혁신기술로 꼽힌다.
정부도 가세해 분위기를 띄웠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경기도 성남 SK텔레콤 인프라관리센터를 찾아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5G 서비스를 개시했다”며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5G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그동안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이통 3사에 연내 5G 상용화 개시를 압박해 왔다. 일반 소비자들은 내년 3월에나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도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에 집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5G 청사진은 재난 대책이 빠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통신 재난의 여파는 통신망 의존도가 높은 초연결사회로 다가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무인드론이 추락하거나 원격 의료 서비스와 자율주행차 등이 갑자기 중단돼 인명피해가 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난 대책이 없는 초연결사회는 사상누각”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중·삼중으로 다중화된 통신망이나 위성망 등 백업(예비) 통신망을 갖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분간 백업 통신망 구축 같은 근본 대책은 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와 이통 3사는 일단 지난달 구성한 ‘통신재난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연말까지 대책을 내놓는다는 방침이지만, 백업 통신망 논의는 뒤로 미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당장은 화재방지시설 확충, 재난 시 이통 3사 간 와이파이 개방·이동 기지국 대여 같이 풀기 쉬운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며 “백업 통신망 구축은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백업 통신망 논의가 길어지는 건 이통사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유선통신은 통신사 간 또는 통신사 내 자체 통신 우회로를 갖추는 게 핵심이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탓에 이통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무선통신은 통신사 간 로밍이 대안으로 꼽히지만 이 역시 이통사 간 경쟁구도 탓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통 3사는 그동안 통신 케이블이 지나가는 길인 ‘관로’를 서로 빌려주는 문제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업계는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가 ‘5G 띄우기’보다는 재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 달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5G 상용화를 서두르느라 통신 안보문제엔 소홀했다”며 “5G 성과를 강조하기보다는 5G 사업화와 안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