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4층. 노인들이 비둘기처럼 모여드는 파고다공원과 이웃한 이 노후건물엔 2000원이면 흘러간 명화를 볼 수 있는 실버극장이 있다. 정은영(44) 작가의 개인전 ‘어리석다 할 것인가, 사내답다 할 것인가’가 열리는 비영리 전시공간 d/p는 이 극장 맞은편에 있었다.
1950~6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한순간에 쇠락한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전시는 낡은 건물이 주는 분위기와 어울렸다. 여성국극은 여성 배우만으로 악극을 상연하기 때문에 남성 역할도 여성 배우가 했다. 서동요, 낙랑공주, 춘향전,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단골 레퍼토리였다.
‘너와 내가 유정하니 어찌 아니가 다정하랴’, ‘이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여성 팬들을 울렸을 법한 명대사들이 벽면에 명멸한다. 한쪽에선 지금은 재봉질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지만 한때 아주 잘 나갔던 남성 역할 배우 출신의 이소자(85)씨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요새는) 남자 같은 남자가 없어. 지금 내 꼴은 이래도….”
남자처럼 눈이 부리부리하도록 눈썹을 과장되게 칠한 여배우 품에 여배우가 안긴 흑백 사진. 여성국극은 페미니스트들이 거리로 쏟아지며 어느 때보다 목청을 높이는 지금 봐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도령으로, 호동왕자로, 로미오로 분장한 남역 배우들은 그 시절 방탄소년단 부럽지 않은 대스타였다. 그들을 만나러 가출을 하고, 패물을 바치고, 극단에 들어와 허드렛일을 자처했던 여성 팬들도 있었다.
정 작가는 10년 동안 여성국극에 천착해 연구·조사하고 배우들을 인터뷰하며, 이를 바탕으로 미술과 공연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했다. 그 집요함을 치하하듯, 미술계는 2013년 에르메스 미술상,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을 안겼다. 내년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공동 참여한다. ‘미술계 3관왕’에 오른 정 작가를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최근 종료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정 작가는 자칭 ‘영 페미니스트’이다. 2008년 문화연구를 하는 선배의 인터뷰를 따라갔다가 여성국극에 빠졌다. 명맥만 유지하는 여성국극을 연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영상작품을 했다. 노인이 된 여성국극 배우들이 비디오카메라 앞에 서는 걸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멍석을 깔아주듯 무대를 마련했다. 미술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그들을 등장시켰다가 예상외로 인기를 끌자 내친김에 무대 공연을 만들었다. 미술가가 공연 연출가로 변신한 것이다. 2016년엔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연극 ‘변칙판타지’를 남산예술센터에 올려 꽤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민음사가 지난 8월 펴낸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에는 문학평론가 허윤씨가 여성국극을 분석한 대목이 나온다. 허씨는 1950년대를 전후 사회가 불안정함에 따라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등 젠더가 교란됐던 시대로 규정했다. 여성국극이 누린 인기도 남성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결핍된 남성성’이 지배했던 시대 분위기에서 찾았다.
여성국극은 해방 이후인 1948년 일제강점기 권번 출신들로 구성된 여성국악동호회가 무대를 만들며 출발했다.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국극은 왜 갑자기 몰락했는가. 일본에서 미혼여성 배우만 등장하는 ‘다카라즈카’가 100년 넘게 이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가 탓이지요. 60년대 박정희 정권하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에서 여성국극이 배제됐습니다. 남녀 혼성의 창극단이 만들어지며 여성국극은 힘을 잃었던 거지요.”
미술인 정은영이 하고자 하는 바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추모가 아니다. 현재의 힘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젠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 미국의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것처럼 젠더는 수행되는 것이라는 걸 여성국극을 보여주며 외치고 싶은 것이다.
영상 작품 ‘분장의 시간’은 남역 여배우들이 더 남성답게 보일 수 있도록 화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더 남자처럼 보이는지 연기 조언을 하는 영상도 있다. 그렇게 훈련함으로써 아이돌 부럽지 않은 남역 여배우들이 탄생했다는 역사적 팩트는 지금 우리에게 무얼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계속 남성을 연습함으로써 훌륭한 남역 배우가 될 수 있었어요. 여성성도 마찬가지예요.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분홍색을 좋아하도록, 얌전하게 앉도록, 목소리를 예쁘게 내도록 사회가 요구하는 걸 수행함으로써 여성다워지는 거지요.”
“아티스트라기보다 실천가”를 자처하는 정 작가다. 그가 머무는 곳은 왜 거리가 아닌 미술관일까. 그는 “거리의 정치는 힘이 세다. 하지만 미술관의 정치에는 특별함이 있다”며 “제 작업을 보고 성별 고정관념이 흔들리며 불편해지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