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닥칠 더 큰 뇌졸중 전조 증상, 지난 5년간 매해 11만여명 발생
작년 발병자 89.2%가 50대 이상
노약자의 경우 날씨 추워지면 외출할 때 털모자 등 착용 필요
한 쪽 팔다리 마비·안면마비·언어장애 등 나타나면 병원가야
50대 중반의 여성 A씨는 최근 말이 갑자기 어눌해졌다가 나아지는 증상을 몇 차례 겪어 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당일 뇌자기공명영상(MRI)검사를 받던 중 왼쪽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도 왔다.
의료진은 급히 혈관에 쌓인 혈전(핏덩어리)을 녹이는 약을 투여하고 혈전을 빼내는 시술을 시행했다. A씨는 심장이 매우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란 병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심장에 혈전이 생겼고 이게 뇌로 흘러가 혈관을 순간적으로 막았던 것. 다행히 병원 진료 도중 뇌경색이 와, 즉시 조치를 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A씨가 겪은 증상은 ‘꼬마 뇌졸중’ 혹은 ‘미니 뇌졸중(Mini Stroke)’이라 불린다. 뇌졸중 관련 근래 의학계에서 주목받는 개념으로, 정확한 의학용어는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다. 뇌로 가는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 뚫리면서 발생한다.
신체마비 같은 신경장애가 수분에서 수시간 계속되다 대개는 24시간 안에 사라진다. 이 때문에 ‘괜찮겠지’ 하고 스스로 판단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미니 뇌졸중은 곧 닥칠 더 큰 뇌졸중(뇌경색)의 전조 증상, 즉 ‘경고 신호’로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미니 뇌졸중을 겪은 후 2일 이내에 뇌경색이 발생할 위험은 5%, 1주일 이내에는 11%에 달한다. 20~30%는 3개월 안에 뇌경색을 겪는다.
미국의 육상 영웅 마이클 존슨(51)도 최근 미니 뇌졸중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존슨은 “누구나 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빨랐던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워지면 미니 뇌졸중 환자 늘어
고려대 구로병원 미니 뇌졸중 클리닉 김치경 교수는 3일 “한국에선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다 보니 국민들이 무슨 병인지 잘 모른다”면서 “해외에서 먼저 미니 뇌졸중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알리기 시작했는데, 뇌졸중의 전조 증상이라는 의미를 쉽게 잘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도 대국민 홍보와 교육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니 뇌졸중 단계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진짜 큰 뇌졸중이 와서 영구적인 뇌조직 손상과 신체 마비 등 심각한 후유증이 따른 뒤 치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 미풍 단계에서 경고 신호를 잘 감지하고 대비해야 생채기를 훨씬 덜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매해 11만여명의 미니 뇌졸중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지난해(11만4963명)의 경우 50대 이상이 89.2%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나이가 들수록 동맥경화와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심방세동 같은 뇌졸중의 위험인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니 뇌졸중이 생기는 데에는 혈전과 함께 ‘죽상반’도 한몫한다. 죽상반은 동맥경화로 손상된 혈관 안쪽 벽에 콜레스테롤이나 조직 찌꺼기가 쌓이면서 끈적끈적한 형태로 바뀌고 혈관 벽이 두꺼워지는 현상이다. 죽상반이 있거나 혈전이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혈관을 일시적으로 막았다가 다시 뚫리면서 미니 뇌졸중이 발생하는 것이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심방세동은 뇌졸중 위험을 5배 높인다.
아울러 요즘처럼 기온변화가 심할 때, 일교차가 클 때, 겨울철에 미니 뇌졸중 경험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는 “추위에 의한 혈관 수축과 그로 인한 혈압 상승이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면서 “추위에 노출되면 혈액 응고(뭉침)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겨 혈전이 생기기 쉬운 조건이 되는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노약자의 경우 기온이 낮은 겨울철 아침 외출할 땐 털모자를 꼭 착용하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매하다 싶을 때도 병원 가야
미니 뇌졸중이 왔을 때 신속히 대처하려면 평소 뇌졸중 증상을 충분히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 대표적 3가지 증상은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힘이 빠지는 편측마비, 말할 때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말을 잘 못하게 되는 언어장애, 그리고 안면마비다. 미니 뇌졸중 환자의 75%가량은 이런 증상을 나타낸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범준 교수는 “편측마비는 흔히 생각하는 ‘저린 느낌’ ‘먹먹한 느낌’ ‘무거운 느낌’과는 다르다”면서 “힘이 빠져서 서 있을 수 없거나 팔을 들 수 없거나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놓치는 경우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드물게 팔 혹은 다리 하나씩 마비가 오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한쪽 팔과 다리가 거의 동시에 힘이 빠지는 게 특징이다.
안면마비는 얼굴이 비대칭으로 나타나며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다만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해 생기는 ‘말초성 안면마비’나 ‘뇌간 종양’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어 구분을 위해서는 전문가 진단이 꼭 필요하다.
언어장애는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은 명확히 있으나 입에서 그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와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모두 해당된다. 이밖에 일어나거나 걸으려고 하면 자꾸 한쪽으로 넘어짐, 평소와 다른 느낌의 두통 및 어지럼증, 시야가 흐려짐, 사물이 두 개로 보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치경 교수는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면 주저하지 말고 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때 치료를 해야 미래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면서 “보통 한쪽에 증상이 생기거나 ‘갑자기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애매해서 잘 모르겠다 싶을 때도 전문의 진료를 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간혹 실신이나 편두통, 부분성 경련 발작, 저혈당 같은 질환을 미니 뇌졸중 증상과 오인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검사를 통해 구분이 필요하다. 섣불리 다른 게 원인이라고 추측하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미국 로욜라대 연구팀은 미니 뇌졸중이 나타났을 때 조기에 적절히 조치하면 이후 뇌졸중을 80%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미니 뇌졸중이 의심되지만 의료진이 진료할 땐 이미 증상이 없을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병력을 얘기해 줘야 한다. 또 목동맥 청진을 통해 혈류 흐름에 잡음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혈관이 좁아지면 ‘슉슉’ 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니 뇌졸중 진단이 내려지면 뇌혈관은 물론이고 심장 등 전신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 계획을 세운다. ‘저용량 아스피린’이나 와파린 등의 약물은 혈전 발생을 막아 뇌졸중의 장기적인 예방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목동맥 부위가 70% 이상 좁아졌을 때는 두터워진 혈관 안쪽 막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거나 혈관 내로 스텐트를 넣어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시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미니 뇌졸중 예방을 위해선 평소 비만 관리와 혈관 건강에 신경써야 한다. 동맥경화 고혈압 등 위험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게 좋다.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 문병후 교수는 “기름지고 지방이 많이 든 튀김이나 인스턴트식품을 피하고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즐겨 먹는 것이 도움된다”고 말했다. 음식은 싱겁게 먹고 국물은 되도록 적게 먹는다, 짠 음식 속 나트륨은 고혈압을 악화시켜 혈관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혈관 벽에 악영향을 주는 술과 담배도 피해야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