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의자왕 20년이자 신라 태종무열왕 7년인 660년. 백제 수도 사비성과 웅진성이 신라 5만, 당나라 10만 등 15만 군사로 구성된 나당연합군에 차례로 무너졌다. 신라 태종무열왕과 당나라 소정방 장군은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치욕스러운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의자왕과 왕족·신료 93명, 백성 1만2000명이 당나라로 끌려가며 왕조의 기둥이 뿌리째 뽑혔다. 백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항복식을 지켜보던 일부 장수들은 봉수산에 올랐다. 백제 부흥의 깃발을 꽂고 봉화를 올려 잃어버린 백제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백제 패망 이후 백제 왕족인 복신과 승려 도침, 흑치상지 장군 등이 백제 재건운동을 시작했다.
서기 663년까지 진행된 백제 부흥운동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곳이 충남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에 있는 임존성이다. 부흥군이 백제의 서방을 관할하던 임존성을 근거로 확보하자 10일도 되지 않아 3만명의 백제 유민이 모였다. 흑치상지 장군이 지휘한 부흥군은 임존성에서 나당 연합군을 물리쳤다. 백제 전역에 해당하는 200여개의 성도 호응했다.
하지만 부흥운동은 663년 임존성이 무너지면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주도권 다툼을 벌이던 지도자들의 분열 때문이었다. 부흥군의 최고 권력은 의자왕의 사촌인 ‘풍’과 승려 ‘도침’이 나눠 갖고 있었다.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면서 풍이 도침을 살해했다. 여기에 흑치상지 장군이 배신해 적군이던 당나라에 항복하고, 선봉에 서서 동족에게 칼을 들이대며 임존성을 공격했다. 부흥군 장수 지수신(遲受信)이 임존성을 근거로 마지막 항전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663년 11월 임존성이 함락되면서 3년 3개월에 걸친 백제의 부흥운동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임존성은 예산군 광시면·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봉수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를 포함한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에 돌과 흙으로 다져졌다. 둘레가 2.4㎞, 면적은 55만3697㎡에 이른다. 성내에는 문지(門址) 2곳,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적대(敵臺) 1곳과 치(雉) 4곳, 배수구(排水口) 1곳, 우물 3곳과 건물터 여러 곳 등이 남아 있다. 성안에서는 삼국(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 자기편, 기와편 등도 출토됐다. 특히 ‘임존’(任存), ‘임존관’(任存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이곳이 임존성임을 뒷받침한다.
봉수산은 해발 484m다. 임존성까지 시멘트 포장된 도로가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성곽은 봉수산 남동쪽 사면에 동서 방향의 길쭉한 타원형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 성벽을 따라 둘레길을 걸어도 좋다. 내포문화숲길 중 백제부흥군길에 속하는 길이다. 일부 복원된 구간을 제외하면 무너져 내린 옛 성곽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 유민의 한과 투혼, 그리고 배신과 좌절이 겹겹이 서려 있다. 군사들의 함성과 민초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임존성 아래에는 2009년 9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국내 6번째로 지정한 ‘예산 대흥 슬로시티’가 있다. 1964년 서울 여의도의 3.7배에 달하는 9.9㎢ 규모의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의 3분의 1이 물속에 잠긴 사연을 갖고 있다.
이 마을은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유래한 마을이다. 벼 베기를 끝낸 가을밤 형제가 서로 상대편의 살림을 걱정해 자신의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다 도중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1978년 대흥면 상중리에서 ‘우애비’가 발견되면서 고려 말~조선 초 대흥면 동서리에 살았던 이성만-이순 형제의 실화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2년 대흥동헌 앞에 의좋은 형제상이 건립되고 2004년 의좋은 형제 테마공원도 조성됐다.
예당호에 출렁다리가 조성중이다. 예당호의 둘레 40㎞, 동서너비 2㎞ 의미를 부여해 402m에 달하는 동양 최대 규모의 인도교다. 주변에 170m의 수변 산책로와 140m의 부잔교도 마련된다. 대흥슬로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새공원이 있다. 황새는 지구상에 2500여 마리만 남아있는 귀한 새다. 황새 증식에 성공하면서 개체 수가 늘어난 황새들을 과거 서식지로 옮기면서 만든 곳이 황새공원이다.
신암면에 위치한 추사고택(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나타난다. 마루에는 세한도 액자가 걸려 있고 기둥마다 ‘세상에서 두 가지 큰일은 밭 갈고 독서하는 일’ 등 추사 글이 걸려 있다. 추사는 이 집에서 태어나 7세까지 자랐다.
▒ 여행메모
국밥·매운탕 등 ‘맛투어’ 하고 온천욕도 즐기세요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당진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예산·수덕사나들목에서 빠진다. 이후 21번 국도를 타고 응봉에서 619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예당저수지를 지나면 대흥면 소재지다. 임존성은 대흥면 소재지에서 616번 지방도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신대리에서 우회전해 마사리로 가면 된다. 길 곳곳에 임존성 올라가는 길을 안내하는 푯말이 서 있다. 성곽까지 이어지는 길은 급경사에다 굽잇길이어서 주의해야 한다. 마을에서 임존성까지 2.3㎞.
가족 단위로 방문했다면 온천 워터파크를 갖춘 덕산온천의 리솜스파캐슬에 묵으면 좋다. 덕산온천에는 가야관광호텔과 덕산온천관광호텔도 있다. 예당저수지 부근에 농촌 펜션이 여럿 있다.
광시면 소재지에는 한우 집들이 몰려있는 한우촌이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식당에서 재료비와 자릿세를 내고 먹으면 저렴하다. 예당호 부근에서는 민물고기로 어죽을 끓여내는 예당가든이나 메기매운탕을 잘하는 양어장가든 등이 이름난 곳이다. 대흥면 상중리의 민물고기 매운탕 전문 서하가든, 예산읍 예산리 상설시장 앞 40년 전통의 할머니장터국밥도 맛집이다.
예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