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의 관세전쟁 휴전이 합의 사흘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미·중 무역협상 대표로 ‘대중(對中) 매파’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중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불쾌감을 애써 감추고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면서 휴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로버트 라이트하우저(사진)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미·중 협상의 미국 대표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중 관세전쟁 휴전이 시장을 진정시켰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파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관세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또 미·중 무역협상을 즉각 재개해 90일 안에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백악관은 미·중 정상이 합의한 12월 1일부터 무역협상 시한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라이트하우저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화해 분위기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라이트하우저 대표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함께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매파 트로이카 중 좌장격 인사다. 그래서 합의서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미·중 휴전이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중 정상 간 합의가 모호했기 때문에 예상됐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을 겸해 열렸던 업무만찬에서 시 주석에게 라이트하우저 대표 기용 사실을 밝혀 중국 측을 놀라게 했다고 WSJ는 보도했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비둘기파’이면서 경제부처 수장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이 미국 대표로 나설 것으로 예상했던 중국은 허를 찔린 셈이 됐다.
라이트하우저 대표의 기용은 90일간 열릴 한시적인 무역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강공 모드를 고수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중 협상이 삐걱댈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이유다. 나바로 국장은 “라이트하우저 대표는 가장 터프한 협상가”라며 이런 예측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의 공세는 이미 시작됐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것이 중국의 이행 속도에 달려있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또 “자동차 관세가 제로까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현재 40%인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없애는 데 동의했다”며 미·중 정상회담 성명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라이트하우저 낙점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강경파가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은 온건파의 말을 따르고, 향후 협상은 강경파에 맡기는 방식으로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게 조정한다는 해석도 있다. 밀려난 므누신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이끌 것”이라며 라이트하우저 견제에 나섰다. 하지만 90일이라는 시한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미·중 사이에 난제가 많고 이견도 크기 때문에 최종 합의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미국이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매체들은 휴전 합의가 미·중 무역전쟁의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치려 애썼다.
관영 환구시보는 4일 “미국과의 무역전쟁 90일 휴전 합의는 최근 긴장 수위를 높여온 중·미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또 “양국은 90일을 확보해 다시 성의를 다해 담판에 나서려 하지만 이견이 매우 커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양측의 신뢰관계 회복을 강조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중 정상회담 후) 발표된 백악관 성명에는 미국이 격렬하게 반대한 ‘중국제조 2025’가 언급되지 않았다”며 “이는 양국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타협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희망 섞인 전망을 했다. 성급하게 반응을 했다가 미국 의도에 휘말릴 수 있는 데다 대미 협상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국내에 부각시키기 위해 중국이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