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염성덕] 인사 항명



노태우 대통령 때의 일이다. 경무관 승진 대상자 명단이 내무부에서 청와대로 올라갔다. 내무부에 파견 나간 경찰이 총경 A씨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A씨는 곳곳에서 축하인사를 받았고, 조촐한 축하연도 열었다. 그런데 청와대 지시로 A씨를 포함해 3명이 빠지고 새로운 3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신조어 ‘백무관’과 ‘억무관’이 등장했다. 경찰 사이에 소문이 무성했다. 여권 최고 실세의 먼 친척인 총경은 백무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청탁을 하러 다닌 총경은 억무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둘만 교체하기가 머쓱했는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제3의 총경을 끼워 넣었다. 억무관이 얼마를 베팅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고받은 이들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베팅액을 짐작할 수 있는 다른 사건이 터졌다. 검찰 수사 결과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승진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3억5500만원을 준 사건이 드러났다.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려면 최소 억대는 썼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애초 승진 대상자 명단에 있던 총경 3명은 항명도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 신군부의 위세가 죽지 않은 때였다.

지방경찰청장 B씨는 공직자 재산공개 때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재임 3개월 만에 단명했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반발했다. 나름대로 설득력도 있었다. 한 부잣집이 경찰 사위 둘을 맞았다. 재산도 비슷하게 물려줬다. 경찰 고위직인 B씨는 반강제로 옷을 벗었다. 계급이 낮은 둘째 사위는 재산공개 태풍에서 살아남았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치안정감까지 올랐다.

최근 치안감 승진 인사에서 누락된 송무빈 서울경찰청 경비부장(경무관)이 공개적으로 항명했다. 송 경무관은 “청와대가 경찰 인사를 좌우하고 백 있는 사람이 승진하는 구조”라면서 “기회는 평등했는지, 과정은 공정했는지, 결과는 정의로웠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는 “탄핵 촛불집회를 평화적으로 관리한 유공자를 승진에서 배제한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그분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지만 지역과 기능을 고려한 균형 인사는 경찰의 오랜 관행”이라고 말했다. 송 경무관과 민 청장의 발언은 다르다. 누구 말이 사실에 가까울까.

염성덕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