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국내 첫 영리병원이 들어선다. 제주도는 5일 제주도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외국 자본에 대한 행정의 신뢰도 추락, 국가신인도 저하, 비상이 걸린 관광객 감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첫 ‘외국계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인 제주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원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당초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의견을 냈으나 불허할 경우 제주에 미칠 대내외적 파장을 우려해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조건부 개원으로 최종 방향을 선회했다.
원 지사는 조건부 개원 허가의 구체적 사유로 투자된 중국 자본 손실에 따른 한·중 외교 문제 비화 우려, 녹지국제병원 투자자의 1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 현재 병원에 채용된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 병원이 프리미엄 외국 의료관광객을 고려한 시설로 건축돼 타 용도로의 전환 불가, 토지의 목적 외 사용에 따른 토지 반환 소송 등을 제시했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취지를 적극적으로 헤아려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 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주로 외국인 환자들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영리병원과 구분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주도가 외국인 대상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하자 지역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도내 30개 단체·정당으로 구성된 의료 영리화 저지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도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중국 자본보다 도민을 우선 생각하는 도지사라면 당연히 공론조사 결과에 따라 개원 불허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도민을 배신하고 영리병원을 선택한 원희룡 제주지사는 퇴진하라”고 촉구했다. 도민운동본부 20여명은 규탄대회에 이어 도청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 1개 중대 및 도청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2006년 2월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은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인 경우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에 외국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고, 법인의 종류·요건·외국의료기관 개설에 필요한 사항을 도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한 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이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신규 핵심 프로젝트로 확정돼 추진됐고,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는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정부 승인을 받은 중국 뤼디(綠地)그룹은 지난해 7월 녹지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8월 개설 허가 신청서를 냈다. 토지 매입과 건설비 668억원, 운영비 110억원 등 총 778억원이 투입된 녹지국제병원은 서귀포시 토평동 헬스케어타운 2만8163㎡ 부지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47병상)로 내년 1월 공식 개원할 예정이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