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내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사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공개 언급하고 나섰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면서,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에둘러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볼턴 보좌관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월스트리트저널 최고경영자 연례 토론회에 참석해 “지금까지 북한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에 부응하지 않았다”며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정상회담이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문을 열어놨고 이제 북한이 그곳으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며 “우리는 다음 회담에서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 “2차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들을 이행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그때까지 경제 제재 완화는 없다”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앞세운 대화 채널이 잘 가동되지 않을 때 등장해 북한을 압박하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란, 러시아와의 외교 이슈에 집중하느라 북핵 문제에선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랬던 그가 북한을 향해 대화에 나오라고 손짓한 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1월이나 2월’로 특정하고, 장소도 ‘세 군데’라고 직접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지난달 8일 뉴욕에서 열기로 한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전격 연기한 이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과 북측 인사 간 접촉이 있었지만 의중 탐색 수준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가정보원은 5일 김 센터장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나려다 못 만났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처음부터 만날 계획이 없었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워싱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북·미 협상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끌고 가고 싶어 한다”며 “그렇지만 북한과 대화는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한 유인책 성격이 짙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대외적으로 비핵화가 완성돼야 제재를 완화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실질적인 진전만 보여도 초기 단계의 제재 완화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상당히 유연해졌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6·12 공동성명 4개 항 가운데 미군 유해 송환 약속을 지켰고,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도 취한 만큼 이제는 미국이 상응조치를 내놓아야 할 때라는 입장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추가 회담이 필요하다는 볼턴 보좌관의 발언과는 상당한 시각차가 있다. 북한이 협상에 나서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미측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