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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용백] 청바지의 상징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달 말 회장직 사의를 발표했다. 스스로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다시 창업의 길을 걷겠다고 밝혔다.연단의 이 회장은 검은색 터틀넥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도전’ ‘용기’ ‘청년’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 차림은 미국 애플사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상징이다. 잡스는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일관되게 이 옷차림을 유지했다. 유명한 자신을 평범하게 하는 반전 속에 신제품에 주목도를 높이고, IT기업의 혁신 이미지 등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한국의 청바지 유행은 지난달 초 타계한 강신성일(1937~2018)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사망 한 달 전에도 청바지에 재킷을 입고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나타났을 정도로 청바지를 애호하는 배우였다. 요즘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1946~1991)가 50, 60대의 감성을 흔들고 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국내 개봉된 지 40일이 넘도록 높은 실시간 예매율을 기록 중이다. 생전 머큐리의 흰색 민소매 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는 팬들의 뇌리에 록(rock) 음악의 ‘자유’ ‘반항’ ‘정열’ 등을 상징적으로 각인시켰다.

청바지는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입는 청바지 브랜드만 봐도 어느 당 후보를 찍을지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가 크리스토퍼 와일리의 주장이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페이스북에서 모은 개인의 패션 정보 8700만개를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돕는 더욱 정교한 선거운동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CA 이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 대선 뒤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발탁됐다. 미국의 전통적 브랜드인 랭글러, 엘엘빈 등의 애용자들은 대체로 낯선 것에 개방성이 낮았다. 이런 성향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구호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드레스 코드를 통해 자기 의도를 암시하거나 드러낸다. 따라서 청바지가 갖는 역사성과 상징은 앞으로도 계속 활용 영역을 넓혀갈 것 같다.

김용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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