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그룹까지 만들어 미국 이민 준비 열공, “함부로 사인하면 안 됩니다”



글 싣는 순서
<상> 이민자 혐오·추방 공포
<중> 최대 위기 맞은 이민사회
<하> ② 달라진 이민 준비 실태 <끝>


“체포나 구금 시 대답하기 전 항상 ‘변호사와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세요.” “이민국 직원이 내민 서류에 함부로 사인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 모인 20~50대 남녀 다섯 명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들은 미국 이민을 위한 스터디그룹 멤버들이다. 한 명은 강사처럼 이민정보를 설명하고, 나머지 네 명은 경청하고 있었다. 네 명은 내년 미국 입국이 목표다.

이민정보를 전하는 사람은 김철영(가명)씨다. 그는 지난 6월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김씨는 살길을 모색한 끝에 국내에서 이민 혹은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이민관련 정보를 전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김씨는 지인 소개로 미국 교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2008년 R-1 종교비자를 취득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교회 관계자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종교비자 만료를 앞두고 미국의 신학대에 입학한 김씨는 학생비자를 취득해 체류신분을 변경했다. 영주권을 얻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2013년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교회 관계자와의 다툼으로 실제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김씨는 항소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추방재판을 받을 처지에 놓이자 김씨는 자진출국 의사를 밝혔지만 처자식을 두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 미국에 머물렀다. 몇 년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지난 4월 이민세관단속국(ICE) 경찰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영주권이 있는 아내와 시민권자인 아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김씨는 한 달간 이민구치소에 갇혔다. 5년간 미국에 재입국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고 홀로 추방당했다. 그는 현재 맡고 있는 3개의 이민 스터디그룹에 ‘추방 위기 시 대처요령’을 빠트리지 않고 가르친다. 미국 내 한인 시민단체인 뉴욕 시민참여센터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이민국 직원이 불시에 들이닥쳤을 때 주소, 신분 상태, 입국시기 및 입국 경위, 비자 상태 등을 말하지 말 것’ ‘이민국 직원에게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수색영장이 있는지 여부와 영장에 수색 장소와 본인의 이름이 제대로 명시돼 있는지 확인할 것’ 등이 그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같은 스터디그룹 멤버인 이진솔(38)씨는 “이민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미국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온라인에서도 서류 미비 등의 이유로 추방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방안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추방재판 전문인 박재홍(미국 뉴저지주) 변호사는 지난 3일 “서류 미비 등으로 체포돼도 약 2시간 동안은 변호사와 접촉할 수 있고 그 시간 동안에는 심문받지 않을 수 있다”며 “관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없으나 무료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의 명단을 요구할 권리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은 원정출산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0월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출생시민권’ 제도를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긴급히 진화에 나섰다. 미국 하와이에서의 원정출산을 알선하는 A업체는 홈페이지에 “삼권분립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미국에서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헌법을 개정해 원정출산을 금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특히 이민자들이 미국의 1·2차 산업을 지탱하는 현실에서 미국 내에서 출생한 자녀들의 시민권 부여를 취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공고했다.

미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B업체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원정출산 알선 문의가 평년보다 2~3배 늘고 있다”며 “출생시민권 제도의 폐지가 이뤄지기 전 원정출산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미국 내 일부 병원들은 원정출산 임신부를 위한 출산 패키지 상품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분만은 7500달러(약 855만원), 제왕절개 분만은 1만750달러(약 1225만원) 등이다.

1억원에 이르는 수수료와 한·미 정부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해마다 2800여명이 원정출산에 나선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6일 “출생신고와 여권 신청 등만 하면 곧바로 자녀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엄청난 혜택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원정출산을 택하는 이들이 앞으로도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강력한 만큼 섣부른 판단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일은 피하라고 조언했다. 최영수 변호사는 “소문이나 주위 분들의 정보에 의존하기보다 전문가를 통해 미국 이민을 설계해야 한다”며 “목표로 하는 비자, 영주권의 요건 및 자격 등을 충분히 알아본 뒤 승인 여부를 사전에 타진해 보고 이민 절차를 밟으라”고 당부했다. 또 “가급적이면 무비자나 관광비자를 이용해 거주하고 싶은 주와 도시를 직접 방문해 학교나 취업 등의 이민경로를 현지에서 직접 미리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현보영 변호사는 “장기적인 신분유지 문제, 취업 가능 여부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민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도 요구했다. 최 변호사는 “한인 유학생은 숫자에 비해 현지 취업이 어렵고 취업이 돼도 취업비자 수가 제한돼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며 “몇 년째 미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국인 특별전용취업비자(E-4)의 통과를 정부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협상해 돌파구를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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