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46)가 캐나다에서 미국 요청으로 체포됐다. ‘90일 휴전’ 합의로 화해 무드를 보이던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무역 불균형 문제를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중 기술전쟁은 중국이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멍완저우는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난 1일 체포됐다. 그는 곧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될 예정이다.
이언 매클라우드 캐나다 법무부 대변인은 “멍완저우는 미국이 인도를 요구하는 인물로, 미국 심문은 7일로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주재 중국대사관은 “캐나다 당국은 미국과 캐나다 법을 전혀 위반하지 않는 중국 공민을 체포했다.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창업자인 런 회장의 딸로, 화웨이의 CFO 겸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고령(74세)인 아버지를 대신해 화웨이를 이끌 후계자 영순위로 꼽힌다. 런 회장이 올해 3월 자신의 부이사장직을 멍완저우에게 넘기자 “후계자 승계 과정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행정제재를 넘어 후계자까지 체포한 것은 ‘90일간 무역전쟁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고강도 대중 압박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화웨이는 중국 IT기업 중에서도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고, 통신장비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수사 당국은 화웨이가 2016년부터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해 이란 등에 제품을 판매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여왔다. 미국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와 중국 장비업체 ZTE의 미국 내 통신망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등 중국의 정보통신 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기업이 통신망에 접근해 미국의 군사·산업 핵심 정보들을 빼내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미국은 ZTE에 대해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ZTE에 지난 4월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했다. 이후 파산 위기까지 몰린 ZTE는 벌금 10억 달러 납부 및 경영진과 이사회 교체 등을 단행하며 제재에서 풀려났다. 지난 10월 말에는 미 상무부가 중국 국유 반도체 제조업체인 푸젠진화반도체에 대한 미국 기업의 수출 제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견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했고, 영국 통신사 BT는 핵심 4G망에서 2년 내에 화웨이 장비를 퇴출키로 했다.
데이비드 츠바이그 홍콩과기대 교수는 FT 기고에서 “미·중 무역갈등은 대규모 기술전쟁 속의 소규모 전투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기술 지배력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됐다고 규정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서방기술 도용, 인재영입 전략인 ‘천인계획’, 제조업 부흥전략인 ‘중국제조 2025’ 등 국가주도형 산업·기술 전략을 겨냥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중국의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종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