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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국민소득 3만 달러, 이런 거였어?



1만5000달러=커피, 2만 달러=와인과 골프, 3만 달러=크루즈, 4만 달러=요트. 1인당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의 기호가 이렇게 바뀐다고 한다. 한국인의 소득이 1만5082달러를 기록한 2004년 서울에 스타벅스 100호점이 문을 열었다. 2만1695달러였던 2007년에는 와인 수입액이 처음 1억 달러를 돌파했고, 2만 달러 시대가 10년 넘게 이어지며 골프는 대중 스포츠가 됐다. 요즘 여행사 광고에선 크루즈 상품을 어렵잖게 볼 수 있으니 3만 달러 시대도 마침내 오긴 한 듯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243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한 지 12년 만에 3만 달러 벽을 넘어서게 됐다. 일본 독일 스웨덴이 4~6년 만에 해낸 일을 우리는 두 배가 걸렸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3만 달러’에 대한 기대도 컸다.

세계에서 3만 달러 소득을 맛본 나라는 31개뿐이다. 모나코와 리히텐슈타인 같은 특수한 소국(小國)을 제외하면 1987년 스위스가 가장 먼저 달성했고 룩셈부르크 스웨덴 일본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독일이 1995년, 미국은 1996년, 영국은 2002년에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인 나라 중에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만 이 대열에 있다. 올해가 지나면 한국은 ‘30-50클럽’(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의 7번째 멤버가 된다. 3만 달러는 선진국에 진입하는 문턱으로 통한다. 이명박 정권의 7·4·7공약과 박근혜 정권의 4·7·4공약에는 모두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겠다는 소리였는데 문턱도 넘지 못했으니 3만 달러는 그만큼 높아 보였다. 1990년대 일본인 독일인 미국인이 누렸던 풍요의 숫자는 12년을 질질 끌다가 결국 찾아왔다. 그럼 한국인은 지금 풍요로운가.

3만 달러 시대의 원년을 보내며 우리는 내내 경제위기를 말했다. 고용은 대란이고 제조업은 무너졌고 혁신은 보이지 않았다. 숫자를 보면 경제의 파이는 분명히 커졌지만 국민은 그에 걸맞은 삶의 질을 체감하지 못해 아우성을 친다. 늘어난 부(富)가 어딘가에 고여 흐르지 않고 있다. 그 막힌 곳을 뚫겠다고 소득주도성장을 꺼냈을 텐데 그것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람이 또 많다. 3만 달러는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더니 막상 손에 닿자 물거품처럼 온데간데없다. 난감한 일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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