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첨단기술의 냉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최고의 IT 국가로 도약을 꿈꾸던 중국과 IT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반도체, 5G 등 미래 첨단산업에 필요한 것을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화웨이는 그 계획의 핵심에 있는 회사다. 화웨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다. 올해 2분기부터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화웨이가 성장하기 위해선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한계다. 게이브칼 연구소에 따르면 화웨이의 주요 공급업체 92곳 중 33곳이 미국 업체라고 CNN이 9일 보도했다. 이 중에는 인텔, 퀄컴, 마이크론 등 반도체 업체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소프트웨어 업체가 포함돼 있다. 연구소는 “미국이 화웨이에 판매 금지 명령을 내리면 화웨이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 푸젠진화에 대해 미국 기업의 기술 및 장비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와 기술이 없으면 중국은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 IT 기업에 대한 압박을 ZTE, 푸젠진화에 이어 화웨이로 확대한 것은 IT 패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최종 승자가 미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영국 가디언은 “첨단기술 냉전 시대에 화웨이가 비극적 결말에 직면했다”며 “미국이 화웨이가 이란 제재를 어겼다는 걸 증명한다면 화웨이는 미국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호주, 뉴질랜드 정부가 화웨이의 5G 장비 도입을 배제하는 등 전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화웨이와 거리를 두는 곳이 많아지는 것도 화웨이에는 악재다.
중국도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중국 빈과일보는 일부 중국 기업이 직원들에게 애플 아이폰을 구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 체포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 일부 기업들은 회사 내 설비, 자동차 등을 구입할 때 미국 제품을 사지 말도록 결정했다. 화웨이, ZTE 등의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경우 시가의 15%를 보조하는 우대책도 내놨다.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반도체 메모리 업체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업체인 마이크론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IT 분야로 확대되는 것은 국내 업체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 형태로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TV, 스마트폰 등 완제품은 영향이 적겠지만, 부품은 중국에 팔지 못하거나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