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난방공사·KT 외주화
저가입찰 맞물려 불안 커져
‘KTX 탈선’ ‘통신대란’ ‘온수관 폭발’ 등 최근 시민의 일상을 흔드는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각각의 사건은 평온한 시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반 시스템에서 발생했다. 저비용, 효율화를 내세우며 안전관리 등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재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최근 여러 사고가 안전 시스템 미흡에 따른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온수관 파열 사고의 경우 지역난방공사가 노후화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해 관리의 허술함이 도마에 올랐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도 통신 ‘먹통’ 사태에 대안(백업회선 등)이 없었고 스프링클러 등 안전장비가 미비해 질타를 받았다. 이번 KTX 탈선사고에 대해서도 임남형 충남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 방지 시스템이 있었다면 열차가 T자형으로 심하게 선로를 이탈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심 재난의 원인에는 공통적으로 안전관리의 외주화가 있었다. KT는 통신에서 가장 중요한 통신선 개설 등 업무를 50개가 넘는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다. 지역난방공사도 백석동 온수관의 안전관리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KTX의 경우 지난 3년간 선로가 900여㎞ 늘었는데 관련 정비인력과 예산은 도리어 줄었다. 코레일은 지난 8월에야 정규직 전환 대상 6769명 중 국민의 생명·안전과 연관된 업무 종사자 1513명을 본사가 고용하고, 5256명은 계열사를 통해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종선 철도노조 차량국장은 “오랜 시간 정규직·비정규직이 각자 분담했던 업무를 조정하는 문제,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외주를 아예 없앨 수 없는 점 등 난제가 남아 있다”며 “조직 안정화에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주화는 저가 입찰 등 관행과 맞물려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외주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외주화를 통해 책임을 전가하고 비용을 깎는 데만 집중하는 관행이 잘못된 것”이라며 “책임관계를 명확히 하고, 비용보전을 충분히 해준다는 전제로 외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외주화는 책임과 권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민의 안전을 맡기고 있는 것”이라며 “외주화 등으로 비용 삭감에 신경 쓸 게 아니라 ‘블랙스완’(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할 전문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재난이 일어나면 1차적으로 재난 대비에 실패한 것이지만 그 후 2차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하지만 온수관 폭발 사태만 보더라도 관 밸브가 빨리 잠기지 않아 1시간 넘게 온수가 배출되는 등 대응이 미흡했다”며 “외주화는 이러한 대응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재난 관리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며 “관리자들이 책임을 지고 예방과 대응을 도맡는 체계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관리를 외주화할 경우 이를 담당한 하청업체가 계약 당사자인 원청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8월 전자제품 공장 화재로 9명이 숨진 인천 남동공단은 민간업체가 소방 점검을 맡아 왔으나 참사를 막지 못해 ‘부실 점검’ 논란이 있었다. 이영주 교수는 “하청업체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외주화로 인한 안전 부실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