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인사들이 최소 14명의 도널드 트럼프(사진) 공화당 후보 측근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이 지난 2주간 법원에 제출한 새로운 기록들을 보면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의 접촉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비수를 감추고 있는 뮬러 특검이 최종 수사 결과에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가족이 러시아 스캔들에 직접 개입했다는 메가톤급 내용을 담을 경우 미국 정치권은 거대한 쓰나미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캠프 인사들을 만난 러시아 인사들은 다양하다. 주미 러시아 대사, 부총리에서부터 러시아 정보기관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팝스타, 전직 역도선수, 변호사, 전직 육군 장교 등이 움직였다. 이들은 18개월간의 대선 유세 과정과 트럼프 승리 이후 대통령직 인수기간 적어도 14명의 트럼프 측 핵심인사들을 비밀리에 접촉했다.
WP는 트럼프 측에선 가족, 친구, 주변 인사들이 러시아 인사들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가족 중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장녀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나섰다. 친구와 주변 인사 중에선 이미 뮬러 특검의 타깃이 된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본부장과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대선 당시 정치 고문 로저 스톤 등이 러시아 인사들을 접촉했다.
러시아 인사들은 대선 운동과 트럼프의 부동산 사업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일부는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의 약점을 내밀었다. 이들은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회동을 주선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접촉 횟수와 접촉 내용 모두 정상적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역으로 트럼프 후보가 러시아에 힌트를 준 사례도 있었다. 트럼프는 2016년 7월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나는 러시아가 사라진 (클린턴의) 3만개 이메일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미 법원 서류에 따르면 바로 이날 러시아는 클린턴 후보의 개인 사무실에서 사용했던 서버를 해킹하려는 첫 시도를 감행했다.
뮬러 특검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만 그는 지난주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 “러시아 정부가 미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미 하원이 이날 공개한 청문회 녹취록에 따르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 7일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수사 초기 미국인 4명을 조사해 러시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코미 전 국장은 다만 수사 대상이었던 4명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코미는 하루에 의회에서 가장 많이 거짓말한 사람으로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며 “그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탄핵 카드를 당장 꺼내들지 않고 특검과 별도로 의회 차원에서 러시아 스캔들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내년에 하원 정보위원장을 맡게 될 민주당의 애덤 시프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감옥에 갈 전망에 직면한 첫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은 “실수들이 과도하게 형사처벌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