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의 삶으로 들어간다.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는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그의 매일은 쳇바퀴 돌 듯 단조롭다. 이른 아침 일어나 마당에 널린 개똥을 치우고, 주인집 아이들을 깨우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잔뜩 쌓인 빨래를 빨아 널고….
고인 물웅덩이처럼 고요한 집안과 달리 거리는 요란하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시위가 줄을 잇는다.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 무장단체가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유일한 일탈이라곤 사랑뿐이던 클레오의 평범한 일상은, 시대의 격랑에 거침없이 휩쓸리고 만다.
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유년시절 가정부였던 ‘리보’에 대한 애정 어린 기억들을 흑백 화면 위에 옮겼다. 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전작 ‘그래비티’(2014)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품. 상처받은 개인들이 서로 보듬으며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감동이 밀려든다.
감독이 살았던 집은 물론, 당시 사용했던 소품과 그 시절의 분위기까지 완벽히 재현했다. 특히 다채롭게 디자인된 음향이 인상적인데, “소리에도 기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쿠아론 감독은 풍성한 사운드 구현에 공을 들였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제작한 ‘로마’는 지난 12일 극장 개봉에 이어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3사가 상영을 거부하면서 대한극장 등 전국 40개관에만 걸렸다. 극장 개봉 후 IPTV 등 부가판권으로 넘어가는 ‘홀드백(hold back)’ 기간에 대한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여러모로 화제작임엔 틀림없다. 빼어난 작품성으로 이미 전 세계 평단을 사로잡았다. 제75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로스앤젤레스(LA)비평가협회 작품상,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감독상을 거머쥐었다. 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다. 135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