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약 2000년 전 아기 예수와 아버지 요셉, 어머니 마리아가 유대왕 헤롯의 박해를 피해 지낸 곳이다. 아기 예수 가족은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를 거쳐 다시 팔레스타인 땅 갈릴리의 나사렛 요셉의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3년 11개월간 장장 2000㎞에 걸쳐 이집트 땅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이들의 흔적을 가장 뚜렷이 찾아볼 수 있는 곳이 기독교 집성촌인 ‘올드 카이로’(Old Cairo)다. 카이로의 발상지이며, 콥트 기독교의 심장이다. 로마 제국 시대 성벽, 유구한 역사의 콥트 교회와 수도원이 남아 있다.
로마 제국 시대 이곳에 수비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성채를 쌓아놓았다. 바빌론 성채다. 로마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의 부장 안토니우스 연합군을 제패해 로마의 황제가 된 뒤 이집트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구축했다. 로마의 트리아누스 황제가 개축하고, 395년 아르카디우스 황제가 중축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채는 일부분이며, 지표면보다 약 6m 낮은 곳에 남아 있다. 무너진 바빌론 성채 옆에 콥트 기독교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옆에 둥근 모양의 지붕을 한 교회가 붙어 있다. 13세기에 세워진 성 세르기우스 교회다. 성 세르기우스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가장 박해하던 3세기 때 시리아 북부 출신으로, 멕시밀리안 황제의 근위대 대장이었다. 그는 제우스 신전에 가서 절하라는 황제의 명에 대해 ‘기독교인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화가 난 황제는 그를 혹독하게 고문하며 개종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죽음으로써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세르기우스의 믿음과 용기를 추앙한 교회가 세워졌다. 성 세르기우스 교회에 들어서면 초대 교인들의 박해 시 고문을 했던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성채 위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 남서쪽 돌출 부분을 기반으로 건설됐다. 교회를 받치는 기둥이 없어서 ‘공중 교회’(Hanging Church)라고 불린다. 교회 이름인 아랍어 무알라카는 ‘매달리다’라는 뜻이다. 교회 내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나가면 바닥에 깔린 유리를 통해 무너진 바빌론 요새 위에 기둥 없이 지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교회가 있던 자리는 고대 파라오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교회에 들어가면 24계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의미한다고 한다. 처음 12계단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이며 두번째 12계단은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인근에 ‘아기 예수 피난 교회’도 있다. ‘아부 세르가 교회’다.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갔던 예수님 가족 일행들이 얼마간 피난 생활을 했던 동굴 위에 세워졌다. 비잔틴 바실리카 양식으로 넓은 회중석과 2개의 긴 복도를 지니고 있다. 대리석 기둥은 12개로 예수님의 12제자를 상징하고 있다. 그 중 11개는 코린트 양식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나 다른 하나는 다른 색깔과 형상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를 나타낸다고 한다. 교회의 천장은 노아의 방주를 나타내기 위해 방주를 거꾸로 뒤집은 형태다. 당시 사용하던 우물도 남아 있다.
성화 속에는 예수를 목마 태운 요셉이 부인 마리아를 말에 태우고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멀리 보이는 카이로 지역을 지나가고 있다. 교회 앞 쪽에 예수님 일행이 피난했던 동굴은 좁은 입구를 통해 내려서면 만날 수 있다. 한쪽 벽에 아기 예수를 눕혀놓았던 장소가 아담하게 마련돼 있다.
이 교회 골목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모세기념교회인 ‘벤 에즈라 시나고그’가 있다. 4세기에 지어졌고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렸다. 나일강변에 버려진 모세가 건져진 곳이자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전해진다. 교회는 원래 콥트교회였으나 유대인 랍비였던 벤 에즈라가 모세가 기도를 올린 땅에 예배당을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해 이곳에 유대교 회당을 지었다.
올드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카이로 교외의 마아디 부근 나일강가에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다. 세 개의 둥근 지붕으로 된 교회로 옛날에는 유대회당이었다. 이곳에서 아기 예수 가족은 돛단배(펠루카)를 타고 남부 이집트로 피난의 길을 떠났다. 1975년 나일강에 떠내려오는 성서(플로팅 바이블)를 건져보니 이사야 19장 25절(복을 받아라. 내 백성 이집트야)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이 성서가 교회에 보관돼 있다.
카이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