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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에 백기 든 마크롱 “책임 통감… 최저임금 인상”

노란 조끼를 입은 한 프랑스 시민이 10일(현지시간) 남서부도시 엉데의 한 상점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TV 생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많은 국민에게 상처를 드린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 노란 조끼 시위대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수용했다. AP뉴시스




4주 넘게 이어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에 결국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백기 투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0일 오후 8시(현지시간) 전국에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많은 국민에게 상처를 드린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그러면서 시위대가 계속 주장해온 요구사항을 대부분 전격 수용했다. 그동안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대다수 서민의 반감을 사왔던 그는 그러나 이런 별명을 갖게 된 ‘부유세(ISF) 폐지’ 철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그의 정치적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었다. 앞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의 깊고 정당한 분노를 이해했다”며 “내년 1월부터 노동자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약 13만원)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상되는 금액은 현재 프랑스 최저임금인 월 1165유로(약 153만원)의 8%에 해당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월 소득이 2000유로(약 260만원) 미만인 저소득 은퇴자에게 부과하던 사회보장기금(CSG)을 인상하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초과근무 수당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도록 조치하고,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연말 비과세 보너스를 지급할 것도 권고했다.

이번 담화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대의 부유세 폐지 철회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부유세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후퇴는 없을 것”이라며 “여기서 뒤로 물러나면 프랑스는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그동안 자주 사용하던 훈계조의 화법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만한 행동과 말투로 비판받던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13분간 이어진 담화에서 침통한 표정과 겸손한 어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여전히 시큰둥하다. 노란 조끼 시위대의 대변인 격인 뱅자맹 코시는 프랑스 2TV 인터뷰에서 “절반의 조치”라며 “우리는 마크롱이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리 남서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하던 한 시민은 BFM방송에 “담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며 “시위대는 국민투표를 원한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오는 15일 5차 시위를 열 계획이다.

시위가 계속될 경우 프랑스의 손실은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중앙은행인 방크 드 프랑스는 올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4%에서 0.2%로 내렸다. 매주말 이어진 시위로 식당·숙박·항공산업 등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포스트 메르켈’ 시대 유럽의 맹주를 꿈꾸던 마크롱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프랑스 내에선 포퓰리스트들이 다시 활개를 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프랑스의 극단적 포퓰리즘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은 당장 목소리를 높였다. 장뤼크 멜랑숑 프랑스 좌파당 대표는 “마크롱이 만일 돈을 뿌려 반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실수”라고 말했다.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도 “마크롱은 그의 경제모델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깎아내렸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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