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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모멸감



이른바 적폐 수사로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한 정치인이 있다. 몇 달 전 어느 날 구속 상태에서 조사받기 위해 검찰청사로 불려갔다. 그런데 복도에서 정부 고위직에 있을 때 직속 부하였던 공직자와 마주쳤다. 자신이 극구 부인하던 뇌물 혐의와 관련해 그 공직자를 참고인 조사하기 위해 검사가 부른 것이다. 수의에다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보고 그 공직자는 충격을 받았단다.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때 포승줄에 묶인 당사자가 느꼈을 모멸감은 다른 사람이 쉽게 가늠할 수 없을 게다. 포승줄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아랫사람과 마주친 그 장면. 검사가 의도한 건가, 아닌가. ‘확실한 추측’은 있지만 검사나 수사 관계자가 “우연이다”고 하면 그런 거다. 우연이 아님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같은, 교도소에 가면 ‘범털’로 분류되는 이들로부터 가끔 수사를 당했던 얘기를 듣는다. 결론 비슷하게 낸다면 ‘모멸감에서 무너지고, 별건 또는 주변 압박에서 무릎 꿇는다’로 모아진다. 모멸감 주기와 별건 수사 또는 주변 압박은 정말 ‘훌륭한’ 수사 기법인 듯하다.

또 다른 적폐 수사를 받고 있는 전직 고위 공직자의 주변을 터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수사관이 사무실 내준 이를 찾아가 왜 사무실을 내줬는지 묻고 간다. 어떤 이는 세무 당국이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사자와 주변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압박일 게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확한 이유는 그만이 안다. 다만 직전에 지인이나 변호사에게 했던 몇몇 언급으로 모멸감이나 별건 압박 등으로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영장심사 대기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수갑을 채워 노출시켰다.

광우병 수사 당시 방송 제작진의 무혐의를 주장하다 정권에 밉보여 검찰을 떠난 변호사 임수빈은 검찰권 남용을 비판하는 책 ‘검사님 지금 잘못하고 계신 겁니다’(2017)에서 이렇게 썼다. “타건 압박 수사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살인적 수사 방법으로 불법적 수사 행태이며,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고통을 주는 가혹행위다.” 한때 ‘칼 좀 써 봤던’ 이의 말이라 더 와 닿는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지만 적폐청산은 그래도 여론의 지지를 좀 받는다. 그렇다고 이런 수사 방식까지 지지하는 건 아닐 거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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