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DC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한때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같은 히어로 캐릭터들로 사랑받았던 DC이건만, 마블의 기세에 완전히 밀렸다. 새로운 세계관(DC 확장 유니버스·DCEU) 안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줄줄이 혹평에 시달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 이후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었다.
DC가 신작 ‘아쿠아맨’(사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장장 143분에 걸친 영화에는 부활을 갈망하는 DC의 야심이 꽉 들어차있다. 장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미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가능한 모든 걸 쏟아부은 듯하다. 특히 영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중세계 장면은 놀라운 상상력과 기술력의 총체다.
그러나 낙관하긴 이르다. 단순하고 진부한 서사 구조와 다소 유치한 설정들이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언론 시사회 반응을 살펴보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모양새다. 마블의 히어로물들이 보여주는 세련미나 참신함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DC 특유의 ‘촌스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과 ‘저스티스 리그’(2017)에 짧게 등장했던 아쿠아맨의 첫 솔로 무비다. 등대지기 아버지(테무에라 모리슨)와 해저 왕국 아틀란티스의 여왕 아틀라나(니콜 키드먼) 사이에서 태어난 아서(제이슨 모모아)가 바다의 왕이자 심해의 수호자인 슈퍼히어로 아쿠아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향후 이어질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셈이다. 1941년 탄생한 ‘아쿠아맨’ 코믹스를 바탕으로 2011년 만화가 제프 존스가 새롭게 펴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쏘우’ ‘컨저링’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등을 연출한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미된 액션을 완성시켰다.
특히 수중 전투신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완성도 또한 뛰어난 편이다. 이를테면 아쿠아맨이 그의 연인이자 조력자 메라(앰버 허드)와 함께 에일리언처럼 생긴 괴생명체 무리를 뚫고 심해저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이부동생이자 아틀란티스 왕인 옴(패트릭 윌슨)과 대결하는 신은 강렬한 감상을 선사한다.
극의 주요 배경인 수중도시 아틀란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공상과학(SF) 기술이 혼합된 듯한 이색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해마 문어 소라게 등 해양생물을 변형시킨 다양한 크리처(CG로 구현한 생명체)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만 몇몇 장면은 1990년대 조악한 SF영화를 연상케 해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캐릭터만큼은 매력적이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아쿠아맨은 영웅적인 카리스마와 동시에 인간미를 지닌다. 때로 헛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를 던지기도 한다. 제이슨 모모아는 “아쿠아맨은 타인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실패할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인간성’이 내가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제벨 왕국의 공주 메라는 아쿠아맨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를 구할 정도로 독립적이고 강인하며, 아틀라나 역시 주체적으로 사랑을 찾고 가족을 지켜낸다. 메라 역의 앰버 허드는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지 않는 캐릭터라서 좋다”며 “강인한 전사의 모습이 잘 표현되길 바랐다”고 했다. 19일 개봉.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