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직이나 이민도 고민했다. 나의 시간과 가능성을 포기해야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40대 직장인)
“모든 일이 ‘해치워야 할 일’로 다가오고, 이런 불안함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요즘에는 스스로 관계에서 탈락하거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도 있다.”(20대 대학생)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절망감을 개인적 차원에서 해소하는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는 12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콘퍼런스를 열고 올해 시민희망지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희망지수는 시민이 개인·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수치화한 지표다. 2016년 시작된 조사는 매년 전국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한국 사회 갈등이 앞으로 심화되고 투명성과 공정성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사회적 차원의 희망지수는 49.6점으로 지난해보다 1.9점 하락했다. 심층분석을 위해 진행된 집담회에서 한 30대 직장인 여성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다”며 “인맥과 비리가 사회를 움직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득·부의 격차와 사회적 갈등 전망에 대해서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69.1%, 58.1%에 이르렀다.
국가 차원에서는 “남북 관계는 희망적이지만 경제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국가 차원의 희망지수는 52.7점으로 지난해에 비해 4.1점 내려갔다. 평화적 남북 관계 전망이 58.1점으로 15.2점 상승했지만 정부 신뢰도(46.8점), 경제적 활력(47.4점) 등이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개인적 차원의 희망지수는 62.1점으로 유일하게 1.6점 상승했다. 다만 취업·사업 기회는 48.6점에 그쳤고, 가족과의 관계(71.2점), 친구·지인과의 관계(67.4점) 점수가 높았다. 손정혁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국가나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보다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거나 가까운 관계에서만 희망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집담회에서는 “일상은 괜찮지만 꿈을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많이 포기하면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발언도 나왔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여기서라도 희망을 찾으려는 절박한 제스처로 풀이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개선해야 희망지수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 연구원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수렴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조사는) 미래를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 즉 ‘꿈’이라는 사회 자본마저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