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2→ 3대 2 ‘역스윕’ 속출, 관중도 뒤집어진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 선수들이 지난 9일 열린 2018-19시즌 V리그 3라운드 우리카드와의 경기 중 환호하며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왼쪽). 여자부의 한국도로공사 선수들이 지난 10월 22일 열린 V리그 개막전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두 팀은 모두 각 경기 초반 1, 2세트를 내줬다가 남은 세 세트를 모두 이기며 역전승하는 ‘역스윕’을 이뤄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지옥에 갔다 온 것 같다. 대한항공을 맡은 후 최악의 시합이 될 뻔했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이 지난 9일 우리카드와의 경기를 치른 뒤 인터뷰에서 내뱉은 첫 마디다. 대한항공은 이날 우리카드에 1, 2세트를 내준 뒤 남은 세 세트를 연이어 따내며 진땀승을 거뒀다. 국가대표팀과 프로팀을 두루 지휘했던 경험 많은 노장이 긴장할 정도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경기였다.

올 시즌 V리그에서 ‘역스윕(2세트까지 패한 뒤 3세트를 연달아 이기며 역전승을 거두는 것)’이 이뤄진 경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패배 직전의 상황에서 경기 흐름을 뒤바꿔 극적으로 승리하는 역스윕은 팀의 사기를 높이고 팬들을 짜릿하게 만든다. 선수들의 높은 집중력과 노련함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결과다.

시즌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역스윕 경기는 벌써 6번이나 펼쳐졌다. 특히 남자배구에서는 1·3라운드에서 한 번, 2라운드에서는 세 번 등 다섯 차례 나왔다. 지난 시즌 남자배구에서 역스윕은 3라운드까지 세 차례뿐이었다. 여자배구의 경우 10월 22일 리그 개막전에서 한국도로공사가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역스윕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이번 시즌 대한항공은 매 라운드 한 번씩 역스윕 경기를 치를 정도로 유난히 고생했다. 1라운드에서는 OK저축은행을 상대로 1, 2세트를 이기고도 3, 4세트에서 20점도 내지 못하며 무기력하게 패했다. 2라운드 우리카드전에서도 2시간30분에 가까운 혈투 끝에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3라운드에서 다시 만난 우리카드와의 맞대결에서 이긴 것이 첫 역스윕 승이다. 박 감독은 이날 “3대 0으로 완승한 것보다 오늘의 역전승이 더 값지다. 대한항공에 좋은 약이 될 것”이라며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카드도 지난달 22일 삼성화재전 패배를 비롯해 올 시즌 역스윕 경기만 세 번(1승 2패) 치렀다. 반면 삼성화재는 2라운드에서 우리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역스윕으로만 두 차례 승리를 챙겼다. 기세를 탄 삼성화재는 역스윕 경기를 포함해 4연승을 달리며 중위권(4위)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승부를 180도 뒤집는 것은 선수들의 집중력 차이다. 앞서나간 팀이 자만하면 범실이 생기고, 추격자들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이세호 KBSN 해설위원은 12일 “1, 2세트에서 크게 이긴 후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다. 승리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에 역스윕을 당하곤 한다”라고 분석했다. 뒤처진 팀의 선수들이 부담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강한 서브를 때리고 편하게 플레이하며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선수들의 노련함도 역스윕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좁은 코트에서 6명의 선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배구는 분위기를 많이 타는 종목이다. 선수들이 초반 리드를 빼앗긴 것에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리듬을 회복해야만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박 감독은 “2세트를 마친 후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만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노련한 선수들이 잘 버텨줬다”라며 역전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선수들은 역스윕 경기를 치르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대한항공의 에이스 정지석은 우리카드전 승리 후 “오늘 같은 경기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부담스러웠지만 역전하는 희열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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