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체포된 멍완저우(46·사진)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대해 보석 결정이 내려지면서 미·중 관계가 또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멍완저우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며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미·중 고위급 대화도 본궤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도둑질’ 등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는 여전히 양국 협상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법원은 11일(현지시간) 멍완저우에 대해 1000만 캐나다달러(84억5000만원)의 보석금과 전자발찌 착용 등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용했다.
멍완저우는 발목에 위치추적용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외출 시 보안요원의 감시를 받고, 밤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밴쿠버 자택에 머물러야 한다. 법원은 그에게 여권을 제출토록 하고 내년 2월 6일 다시 법정에 나오라고 명령했다. 멍완저우는 불구속 상태에서 미국 송환을 위한 심리를 받게 된다. 보석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변호인과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멍완저우 보석으로 미·중 무역협상에 속도가 붙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판을 깔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멍완저우 수사에 개입할지 묻는 질문에 “이 나라에 좋은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할 것”이라며 “역대 최대 무역 합의와 국가안보에 좋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개입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멍완저우 석방 여부에 대해 “다양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협상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화웨이의 혐의가 중대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는 멍완저우 보석 결정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여 그의 석방이 미·중 무역협상의 일부였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협상도 진전이 있다면서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40%에서 15%로 낮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 등 미·중 고위 관리들은 전화통화를 하고 다음 무역협상 추진을 위한 일정표와 로드맵을 논의했다. 류 부총리는 미국 측에 미국산 자동차를 낮추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무역협상 시한 전에 중국 시노펙의 계열사 유니펙을 통해 미국 석유를 수입하고, 미국산 대두(메주콩)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미·중 협상에서 가장 민감한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와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사이버절도 등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특히 미국이 ‘기술 도둑질’로 비난하는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 등 불공정 관행에 대해선 중국이 언급을 회피하고 있어 양국 협상에서 최대 뇌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중국은 자국을 방문한 캐나다 전직 외교관인 마이클 코프릭 국제위기그룹(ICG) 선임고문을 억류했다. 코프릭은 최근 북한 관련 보고서 작성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억류됐다. 중국은 ICG가 자국에 정식 등록돼 있지 않아 코프릭의 중국 내 활동이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일각에선 멍완저우 체포에 따른 보복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