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강릉발 서울행 806호 KTX 산천 열차의 탈선 사고 전후 상황이 담긴 관제 녹취록이 12일 공개됐다. 사고 28분 전 선로 전환기 고장 신호가 감지됐지만 경보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엉뚱한 곳을 지목하면서 역무원들이 제대로 조치를 못했고 결국 열차는 출발 5분 만에 사고를 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이 제출받은 녹취록에는 서울 구로구 철도교통관제센터와 강릉역, 강릉기지, 열차 간 교신상황이 사고 당일 오전 7시7분부터 36분까지 기록돼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최초 사고 조짐이 감지된 때는 7시7분이다. 이때 강릉기지 관제사가 “선로전환기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고 말한다. 이에 구로 관제사가 “큰일 났네, 이거”라며 강릉발 열차 출발을 걱정한 뒤 코레일은 선로전환기에 초기대응팀을 파견했다.
구로 관제사는 이후 7시17분에 “806열차가 나가는 데 지장이 없냐”고 묻는다. 이에 강릉 관제사는 “이것(806 열차)은 보낼 수 있다. 신호에서 그렇게 얘기했다”고 답하지만 이 당시 해당 철길의 선로전환기가 고장 난 상태인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들은 차량기지 선로전환기에 관심을 돌렸고 806열차가 출발하면 수동으로 선로전환기를 조작해 대기 중인 또 다른 열차를 차량기지에서 출고시키자고 의논한다.
당시 고장은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철길에 설치된 선로전환기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후 확인됐다. 문제는 고장 신호가 차량기지에 있는 다른 선로전환기를 가리켜 사고 전 10분 넘게 관제사 및 대응팀의 초동대응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경보시스템과 연결되는 두 선로전환기의 회로가 바뀌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806열차는 7시30분에 출발했지만 관제사들은 사고 직전인 7시34분까지 차량기지 선로전환기를 수동 조작하는 문제에만 매달렸다. 실제로는 806열차가 지나갈 철길 선로전환기가 고장 난 상태였지만 아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시선이 분산된 셈이다. 1분 뒤인 35분 806열차 기장은 관제사들을 불러 “열차가 탈선했다”고 전한다. 서울 방향 선로전환기 인근에서 튕겨나간 열차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차량기지 선로전환기 고장을 확인하던 강릉역 역무팀장을 덮쳤다. 강릉역 관제사는 황망한 듯 “열차 탈선했다고 했습니까”라고 되묻는다.
녹취록에 따르면 관제센터와 강릉기지, 역 관제사 등은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지만 경보시스템 자체 오류로 인해 누구도 사고를 막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다. 시설 문제에 대한 정확한 현장 판단이 이뤄졌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코레일이 철도 운영사이면서 동시에 관제업무까지 맡고 있는 업무 분장에 대한 적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