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구조조정이 헛돌고 있다. 주력 제조업의 위기가 촉발한 지역경제 붕괴,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장지대) 확산을 막으려면 상시적이고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선제 대응해 체질을 바꾸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수주 절벽’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구조조정에 돌입한 조선산업의 전철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실적 경고등’이 켜진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을 활용한 사례는 고작 두 건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조선산업과 달리 자동차산업에는 정부 지원을 받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활법은 내년 8월이면 일몰을 맞는다. 정부가 일몰 연장을 논의하고 있지만 정치권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상시 구조조정 지원으로 경기 부활을 이끌어낸 일본과 대비된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활법 발효 이후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승인받은 기업은 94곳이다. 일명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활법은 정부의 구조조정 지원 제도다. 인수·합병(M&A) 또는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기업을 위해 ‘걸림돌 규제’를 없애주고 한꺼번에 세제·금융 지원을 해준다.
기활법으로 구조조정 승인을 받은 94개 기업 가운데 33개(35.1%)는 조선 분야 기업이다. 이어 철강 13곳, 기계 12곳, 석유화학 10곳 등이었다. 지난해 조선산업의 출하액은 50조8870억원으로 전년(67조5750억원) 대비 24.7% 감소했다. 그만큼 기활법을 활용해 구조조정 지원을 받는 기업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실적 하락 징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자동차 분야 기업의 기활법 활용은 거의 없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선 곳은 자동차 정비 업체인 카젠, 부품 제조 업체인 신평산업 2곳뿐이다. 전문가들은 조선산업처럼 실적이 바닥을 친 뒤에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활법은 당초 3년 시한을 두고 출발했다. 산업부는 일몰을 5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정치권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이 2024년까지 일몰을 늦추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지난 10월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정치권에선 기활법은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역점 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 논리가 산업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기활법 일몰 연장이 무산되면 자동차 업계를 포함해 산업계 전체가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이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고 새 먹거리를 찾으려면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도 기활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일본처럼 기업별 맞춤형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전성필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