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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나를 내려놓고 말씀의 씨 뿌리자 주민들이 변화”

멕시코 민주식 선교사가 지난달 칸쿤 킨타나로오주 쿠나마야의 아동개발센터에서 교육을 접촉점으로 지역 아동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민주식 선교사(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아동개발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한 뒤 학부모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기아대책 제공


멕시코 칸쿤 킨타나로오주 쿠나마야 지역에서 아이들을 섬기는 민주식(63) 선교사는 빈민가 아이들의 ‘엄마’로 불린다. 칸쿤은 세계적인 휴양 도시지만 호텔촌을 조금만 벗어나면 빈민가를 쉽게 볼 수 있다. 부모들이 생계를 위해 호텔 등으로 일하러 간 사이 방치된 아이들은 마약범죄 조직 ‘카르텔’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다.

2011년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에서 ‘기대봉사단’(전문인 선교사)으로 파송된 민 선교사는 지역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복음을 받아들이며 변화되고 있다. 칸쿤에서 어둡고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지역이 생기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초 쿠나마야 아동개발센터에서 민 선교사를 만났다.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선교사 결단

민 선교사는 왜 머나먼 이국땅에서 홀로 사역을 하고 있을까. 그는 “원래 선교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니 두 명이 사모였는데 형부들을 신학공부까지 시키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속상했죠. 모태신앙이었으나 언니들이 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어요.”

둘째 언니는 이혼해 홀로 아들을 키우는 민 선교사를 볼 때마다 선교사를 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저는 어린이집 등에서 일을 했는데 이것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둘째 언니는 절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환상으로) 선교지를 보여주신다고 말했죠.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났나 봐요. 어느 날 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2002년 둘째 언니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제 내 차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나님 저 선교사 보내려고 언니를 데려가신 건가요. 왜 언니를 데려가셨어요.’ 언니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서 미안한 마음에 펑펑 울었어요. 언니를 그렇게 보내고 이후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교육을 접점으로 한 사역 전개

민 선교사는 어느 선교지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기도 중 멕시코 유카탄에서 선교하는 외삼촌 김종혁(82) 선교사가 떠올랐다. 민 선교사는 2003년 성광침례교회(유관재 목사)에서 파송 받았다. 당시 아들은 군대에 입대할 시기였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멕시코에 온 그는 2004년 칸쿤 레오나비카리오 지역에서 외삼촌과 함께 정규유치원을 개원했다.

2010년까지 유치원을 운영하며 항상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주민들이 쓰레기 청소, 집수리 등을 요청하면 교회 선교팀 등과 협력해 마을 사업도 진행했다. 지역 지도자의 아이들이 유치원에 등록하자 아이들 부모를 위한 지도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역사회 그룹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조직해 마을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정규 교육사역을 하다 보니 종교교육을 하기 어려웠다. 민 선교사는 “유치원 원장을 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는데 너무 바빴어요. 그래서 교육 사업을 접고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아대책의 아동개발사업을 시작했죠.”

4대째 이어지는 선교의 사명

민 선교사는 현재 6000여 명이 있는 쿠나마야 지역에서 아동개발센터를 통해 아이들에게 교육을 전하며 크리스천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주민들이 하나둘 그의 진심을 알기 시작했다. 빈민가 가정 가운데 깨어진 가정이 많아 부모교육을 매월 하고 합동결혼식 등 가정을 세우는 사역도 진행한다.

“거짓말을 자주 하고 마음이 강퍅한 현지인들의 마음을 하나가 되도록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사역이 힘들어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죠. 그때 하나님은 ‘그러니까 네가 여기에 있어야 하지 않니’라며 마음에 감동을 주셨어요. 저의 경험을 다 내려놓고 말씀으로 씨를 뿌리니 아이들과 부모들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민 선교사는 마약 등으로 계속 위험해지는 칸쿤의 안전을 위해 뉴욕신광교회(강주호 목사)와 협력해 플래시몹 등을 하며 평화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내년엔 자살률이 제일 높은 칸쿤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등도 진행할 계획이다.

민 선교사는 “4대째 선교의 사명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일본 칸사이대 신학부에서 공부한 외조부인 고 김춘배 목사는 1945년 기독교공보(현 한국기독공보) 창간에 참여했고 초대 편집인으로 활약했다. 48년 대한기독교서회 총무에 선임돼 20년 이상 문서선교를 이끌었다. 멕시코에서 복음을 전한 외삼촌 김 선교사와 민 선교사에 이어 민 선교사의 조카(둘째 언니의 딸) 나희진(42) 선교사도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민 선교사는 “제 아들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길 기대하고 있다. 아들도 하나님이 만약 부르신다면 순종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선교하며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도전을 주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언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내 마음도 이렇게 좋고 뿌듯한데 언니도 천국에서 (이런 동생을 보며) 기쁘지?’”

칸쿤(멕시코)=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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