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태원준] 연말 총화



해마다 이맘때면 북한 장마당의 돼지고기 값이 뛴다고 한다. 몇 해 전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12월 초순 장마당 물가를 전했는데 돼지고기 1㎏이 평양은 1만2000원, 신의주는 1만25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일주일 전보다 2000원쯤 오른 거라고 했다. 쌀과 밀가루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비쌌다. 까닭은 각급 기관·단체마다 이 무렵 개최하는 ‘연말 총화(總和)’였다. 이 행사를 치르면 꼭 음식을 나눠먹어야 해서 식재료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부들로 구성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여맹)이 총화를 하면 가족들 음식까지 준비하기에 장마당은 대목을 맞는다. 한 탈북민은 “총화 기간에는 장마당 상인들이 가격을 담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낯선 ‘총화’란 단어를 북한 사람은 동사로도 자연스럽게 쓴다. 지난 10월 남북 장성급회담을 마친 북측 수석대표는 취재진에게 “9·19 군사합의의 첫 단계 이행을 구체적으로 총화했다”고 말했다. 이행 상황을 결산했다는 뜻이었다. 연말 총화는 연말 결산, 즉 한 해의 성과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자리다. 북한에선 대단히 중요한 절차여서 해외 무역일꾼도 모두 귀국하곤 한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돼 이들을 귀국시킬 수 없게 되자 북한은 무역일꾼 연말 총화를 이듬해 3월로 연기해서 기어이 개최했다. 국가 운영을 위해 결코 빼먹을 수 없는 의식(儀式) 같은 것임을 말해준다.

노동당을 비롯한 정부 기관의 연말 총화는 우리로 치면 각 부처가 대통령에게 하는 신년 업무보고의 성격도 갖고 있다. 결산과 함께 내년 목표를 설정해 제출하는데,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토대가 된다. 총화 결과를 취합해 분야별 전문가들이 신년사 초안을 만들고 여러 단계 검증을 거쳐 서기실이 최종안을 보고한다. 12월 한 달간 연말 총화를 해서 신년사가 발표되면 1월 한 달간 각급 기관별로 신년사 관철 결의모임을 갖는다. 올해 북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은 모두 지난 1월 1일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 김 위원장 신년사에서 시작됐다. 내년의 큰 흐름도 곧 나올 신년사에 담길 것이다. 그 방향을 정하기 위한 연말 총화가 하부조직부터 한창 진행되고 있다. 어렵게 시작한 비핵화와 평화의 여정이 고비를 맞았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태원준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