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북한과 아무 조건 없이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에 묵묵부답이던 북한은 “미국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기대하는 최소한의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협상이란 건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게 미니멈 라인(최소한의 기준)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아무 조건 없이 북한과 실무회담에서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일단 얘기를 들어보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미는 지난달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기로 했던 고위급 회담이 북측 요청으로 연기된 이후 일정을 못 잡고 있다. 미 정부는 여러 차례 북한에 회담 날짜는 제시했지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미(북·미) 관계의 전도는 미국이 어리석은 사고에서 언제 깨어나는가에 달려 있다”며 “출로는 미국이 우리가 취한 조치들에 상응한 조치들로 계단을 쌓고 올라옴으로써 침체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간의 침묵을 깨고 비핵화 협상 교착의 원인을 미국에 돌리며 상응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최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 나온 첫 반응이다.
미 정부는 최근 인권 문제를 내세워 북한을 옥죄고 있다. 미 재무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오른팔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데 이어 국무부는 북한을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조치들이 비핵화 협상에 나오지 않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 “미 정부는 대북제재법에 의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매년 의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며 “시기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또 “미 정가와 의회를 합쳐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좀 더 두고 보자 하는 기대도 있고, 과거 경험상 북한은 똑같지 않겠냐 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미 정부의 관심이 떨어졌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미 중간선거 이후 북핵 이슈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심사에서 밀려났다는 일각의 해석을 부인한 것이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조윤제 주미대사는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미는 때로 특정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접근하기도 했지만 늘 신뢰와 우의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대화하고 공조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과정을 통해 한·미 관계는 더욱 굳건하고 돈독해졌다”며 “주미 한국대사관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의 한국팀과 공동상황실을 운영하는 것처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윤근 주러대사는 별도 기자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시기에 대해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우 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국 방문 일정과 관련해선 “내년 상반기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