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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당신, 숨 가쁘다면 심장판막 질환 의심해 보세요

노년기 건강 복병으로 급부상한 퇴행성 심장판막질환은 판막이 노화로 제 기능을 못하면서 운동하거나 계단 오를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퇴행성 판막협착증 진료 받은 환자 5년 새 60% 증가… 70대가 37.4%
심장초음파 국가검진 포함돼야


60대 초반의 최모씨는 몇 년 전 정년퇴직하고 그간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만끽하며 인생2막을 즐기고 있었다. 직장생활에 헌신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건강을 위해 등산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에 이상이 왔다. 산을 오르기 위해 몇 발짝만 옮겨도 심장이 두근대고 숨이 차올라 중도 하산하는 일이 잦아졌다. 증세가 되풀이되자 병원을 찾은 그에게 ‘심장 판막증(대동맥판막협착증)’ 판정이 내려졌다. 최씨는 “사회에서 물러나 이제 좀 쉬려는데 이런 병이 찾아와 서글프다. 현역에 있을 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심장은 심장근육이 지속적으로 펌프질하면서 피를 받아들이고 내뿜기를 반복한다. 판막은 이 과정에서 피가 앞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밸브(대문) 역할을 한다. 특히 피를 전신으로 내뿜어 주는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 판막이 좁아져 피가 시원하게 나가지 못하는 병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이다. 가장 큰 원인은 나이들어감에 따라 진행되는 판막의 석회화(콜레스테롤, 지방 등이 쌓여 굳어짐)다. 한마디로 판막의 노화 현상인 셈이다.

최근 몇 년 새 은퇴 후에 퇴행성 심장판막질환을 진단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 심장판막질환은 선천적 심장기형을 동반해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고령사회에 접어들며 퇴행성 판막질환이 노년기 ‘건강 복병’으로 떠올랐다.

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동맥판막협착증 진료 환자는 1만1888명으로 2013년(7444명)보다 59.7%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70대가 37.4%로 가장 많았고 80세 이상(30.1%), 60대(20.8%) 순이었다. 10명 가운데 9명 가까이(88.3%)가 60대 이상 고령자였다.

또 다른 퇴행성 판막질환인 ‘대동맥판막폐쇄부전’ 환자도 2013년 1만624명에서 지난해 1만1867명으로 11.7% 늘었다. 역시 60대 이상이 전체의 70.5%를 차지했다.

대동맥판막폐쇄부전은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위치한 ‘승모판막’이 낡아 생긴다. 좌심실로 들어온 깨끗한 피가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나이들면서 판막 부착 부위가 늘어나거나 얇아져 느슨해지면서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폐쇄부전이 생기면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좌심실로 들어온 피가 좌심방으로 거꾸로 새들어가 심장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고려대 구로병원 흉부외과 백만종 교수는 “출산율이 감소한 데다 태아초음파검사를 통한 심장기형의 조기 발견 및 적절한 조치가 가능해지면서 심장판막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확 줄었다”면서 “반면 평균 수명의 증가로 판막에 퇴행성 변화가 생기는 후천성 심장질환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과거처럼 류머티스열(포도상구균이 피 속을 떠돌다 판막 손상 초래)을 겪은 후 심장판막이 망가지는 사례도 많이 줄었다.

백 교수는 “집의 대문이 오래되면 힌지에 녹이 끼어 ‘끽’ 소리나고 잘 안 닫히듯이, 심장 피흐름에 대문 역할을 하는 판막이 낡아서 생기는 문제”라면서 “심장에는 모두 4곳에 판막이 있는데, 왼쪽의 좌심실과 좌심방이 온 몸으로 피를 내뿜는 곳이다 보니 부하가 많이 걸려 아무래도 관련 조직이나 기관이 닳고 협착이 잘 된다”고 설명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호흡곤란이 온다. 처음에는 운동하거나 계단 오를 때 증상이 나타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앉거나 가만 누워 있어도 심해져서 숨이 가빠지게 된다. 판막질환이 오래돼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면 아무런 신체활동 없이도 가슴 두근거림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기침과 피가래, 가슴통증, 어지러움, 손발 붓는 증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판막의 노화가 가벼운 단계에선 대부분이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최영진 과장은 “대동맥판막협착증은 판막이 심하게 좁아진 이후에나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힘들다”고 말했다. 대개 다른 질환으로 찾은 병원 또는 건강검진에서 청진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다. 특히 소화기질환과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백만종 교수는 “실제 최근 60대 여성이 명치 부위에 답답함과 통증을 느껴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청진을 통해 심장의 잡음을 잡아내 판막협착증으로 진단한 적 있다”고 했다. 심장 판막이 좁아지면 혈류 흐름에 방해를 받아 청진 시 ‘슉슉’ ‘드르럭 드르럭’하는 소리가 들린다.

최영진 과장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증상을 느낄 즈음이면 많이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심부전(심장 펌프질 기능 이상)상황에 처하고 심하면 급사(急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퇴행성 심장판막질환의 조기 진단을 위해 심장초음파검사를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가건강검진에 심전도와 흉부X선촬영이 들어가 있지만 이들 검사만으로는 심장 이상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 교수는 “심장초음파를 통해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어떤 판막에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심장판막 협착의 진행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심장판막질환 치료는 이뇨제 등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하고 진단이 늦어 심한 협착증이나 폐쇄부전으로 진행됐다면 수술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수술은 자신의 판막을 보존한 채 망가진 부위만 잘라내 피가 잘 지나가도록 하는 방법(판막성형술)이 있다. 이 방식으로 해결이 안될 땐 손상된 판막을 떼어내고 조직 혹은 금속으로 된 인공판막을 대체해야 한다.

몇몇 대학병원에선 2014년 신의료기술로 승인난 ‘무봉합 대동맥판막교체술’을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망가진 대동맥판막을 대체하기 위해 인공판막을 기존처럼 꿰매지 않고 대동맥혈관 안에 고정시키는 수술법이다. 수술 중 심장 정지 시간을 크게 줄이고 기존 1시간에 달하는 수술 시간도 25분 이내로 줄일 수 있다. 최근 이 수술 100례를 시행한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이승현 교수는 “신체적 부담이 큰 80세 전후 노령 환자나 인공판막을 꿰매기 어려울 정도로 판막의 노화가 많이 진행된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법”이라면서 “이 수술에 쓰이는 인공판막 비용의 50%까지 건강보험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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