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 살던 7세 소녀 재클린 에머이 로즈메리 칼 매퀸은 지난 1일(현지시간) 아버지 네리 칼(29)과 함께 미국행 버스에 올랐다. 재클린은 미국에서 장난감을 가질 수 있고 돈을 벌어 고향에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부녀는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약 3200㎞를 북상했다. 이들은 출발 닷새 만인 지난 6일 오후 10시쯤 뉴멕시코주 국경순찰대 초소에 도착해 망명 신청을 했다.
이민자는 재클린 부녀를 포함해 163명이나 됐다. 하지만 당시 초소에서 근무하던 관세국경보호청(CBP) 직원은 고작 4명이었다. 직원들은 이민자의 건강상태를 간단히 점검한 뒤 150㎞ 떨어진 로즈버그 소재 국경관리소로 이송키로 했다. 사용 가능한 버스가 한 대밖에 없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자 50여명부터 먼저 보냈다. 나머지 이민자들은 구금상태에서 버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재클린 부녀가 버스에 오른 것은 이튿날인 7일 오전 5시쯤이었다.
재클린은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토 증상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즉각 이 사실을 직원에게 알렸지만 도착지인 국경관리소 측에 “응급 진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재클린은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한 직후인 오전 6시30분쯤 발작을 일으켰다. 의료진은 재클린을 헬기에 태워 엘패소 소재 프로비던스 어린이병원으로 옮겼다. 재클린은 한때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가 응급조치를 받고 회복하는 등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24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8일 숨졌다.
재클린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재클린이 국경에 도착해 위중한 상태에 빠질 때까지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는 보도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을 통해 나오면서 미국 입국 이민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재조명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가혹한 반(反)이민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 당국은 해명에 나섰다. 케빈 매컬리넌 CBP 국장은 성명에서 “직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했다”면서 “혼잡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장거리를 이동하고 물과 음식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재클린이 과테말라에서 미국으로 오는 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건강을 해친 게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15일 대리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재클린은 미국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충분한 물과 음식을 제공받았다”면서 “장시간 사막을 건넌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