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명을 죽인 살인마가 난간에 매달려 있다면 경찰은 뭘 해야 할까. 그를 구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 상식을 벗어난 형사가 있다. 그는 살인자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진짜 ‘정의’를 위해. 드라마 ‘나쁜형사’(MBC)의 주인공 우태석(신하균)이다.
월화극 ‘나쁜형사’가 독주 중이다. 지난 11일 방송된 7, 8회에서 각각 7.3%(닐슨코리아), 8.7%의 시청률로 같은 시간대 드라마 중 선두를 달렸다. 화제성도 높아 CJ ENM과 닐슨코리아가 발표한 이달 첫째 주 콘텐츠영향력지수에선 1위를 차지했다.
‘나쁜형사’는 영국 BBC 인기드라마 ‘루터’의 리메이크작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범인을 잡기 위해 불법도 마다치 않는 형사 우태석과 천재 사이코패스 은선재(이설)의 아슬아슬한 공조 수사를 그린다.
자극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작심하고 만든 듯한 ‘센’ 장르극이 일단 먹히는 모양새다. 지상파에선 이례적이게 첫 회가 ‘19금’으로 전파를 탈 정도로 납치와 살해 장면 등 강렬한 시퀀스들이 극 곳곳을 메운다. 미드(미국드라마) 같은 세련된 연출과 인물들의 전사(前史)를 세밀히 추가한 각색도 매력을 더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악인을 잡는 나쁜 형사를 지켜보는 게 큰 묘미다. 도덕심으로 똘똘 뭉친 기존 수사물의 경찰과는 달리 자유로이 범죄현장을 누비는 우태석의 모습은 자경단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우태석이란 인물이 강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바라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셈”이라며 “인물을 추가하고 이야기를 확장해 기존 형사물의 뻔한 구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신하균의 특출한 연기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드리스 엘바가 표현한 원작의 루터가 길들지 않은 짐승 같았다면, 우태석은 외로운 늑대처럼 날카롭고 냉철하다. 다만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호불호가 갈린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이설은 광기와 냉정함을 오가는 사이코패스의 면모를 곧잘 표현하지만, 때때로 과장됐다는 느낌을 준다.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 전춘만 역을 맡은 박호산이나 살인마 장형민 역의 김건우는 안정적이지만 전형적인 연기에 그친다는 평가가 있다.
빠른 전개를 이어가면서도 개연성 부족 문제를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 평론가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공감을 얻은 드라마인 만큼, 극적 설정과 현실성의 충돌을 잘 조화시켜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