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견뎌내는 곰에게서 현대인 모습을 봤습니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곰’ 프롤로그 편에 등장한 북극곰. 북극곰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먹잇감을 사냥하기 힘들어져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MBC 제공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진만 PD. MBC 제공


MBC가 지난 3일 선보인 다큐멘터리 ‘곰’의 프롤로그 편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됐다. “두려움을 이기고 목숨 걸고 찍었습니다. 2년 동안 곰을 찾아서 전 세계를 누빈 길고 험난한 여정. …무한한 매력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인간의 친구. 곰의 세상이 열립니다.”

“목숨 걸고 찍었다”는 표현이 얼마간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방송을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제작진은 곰의 표정과 생태를 리얼하게 담기 위해 지근거리에서 곰을 촬영했는데 위험한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화면 속 곰은 곰돌이 푸와는 많이 달랐다. 빠르고 사나웠다. 조금이라도 수틀려서 제작진을 향해 돌진하면 많은 사람이 창졸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방송에서 최정길 촬영감독은 연어를 잡는 곰들을 촬영하다가 정색하면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진짜 (곰이) 너무 가깝게 오네요. (이걸 촬영하는 건)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거예요.”

제작진의 노력 덕분일까. 다큐멘터리의 수준은 빼어났다. 세계 각지에 사는 곰들이 차례로 등장했는데, 영상은 수려했고 그 안에 담긴 ‘드라마’는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김진만(47) PD. 최근 서울 마포구 MBC에서 만난 김 PD는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 곰은 온순하고 미련한 동물이지만 야생의 곰은 다르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곰은 빠르고 교활한 동물”이라며 “계속 긴장하면서 촬영에 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망원렌즈로 멀리서 잡으면 안전하겠지만 그렇게 찍으면 감동적인 장면을 담을 수가 없어요. 곰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죠. 국립공원 담당자들과 동행했는데, 그들이 그러더군요. 곰의 ‘길목’을 막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숲에서 강으로 가는 길, 연어를 잡아서 밖으로 나오는 루트…. 이런 걸 막아선 안 된다고요. 그런 걸 염두에 두면서 곰의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1996년 MBC에 입사한 김 PD는 ‘아마존의 눈물’(2009~2010), ‘남극의 눈물’(2011~2012) ‘곤충, 위대한 본능’(2013) 등을 만든 베테랑 연출자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PD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아마존의 눈물은 방영 당시 시청률이 25%를 웃돌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었다.

그런데 김 PD는 하고많은 동물 가운데 왜 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한 것일까. 시작은 영국의 한 다큐멘터리 제작사와 가진 미팅이었다. 김 PD는 “당시 새 아이템을 찾고 있었는데 이 제작사에서 곰을 다룬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겨 곰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곰이라는 게 참 재밌는 동물이더군요. 백수의 왕이라고 하면 우린 사자나 호랑이를 떠올리지만 유럽에선 곰이 첫손에 꼽혀요. 그렇다 보니 곰과 관련된 미신이나 신화가 엄청나게 많죠. 곰을 다룬다면 철학적이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제작진은 2년간 지리산을 비롯해 북극 알프스 시베리아 등 전 세계 12개 지역을 돌아다녔다. 제작비는 15억원. 방송은 다음 달 28일부터 4주에 걸쳐 매주 월요일 밤 11시10분에 전파를 탄다.

“곰이 매력적인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에요. 강하다는 건 단순히 힘이 세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곰은 외로움을 견뎌요. 특히 수곰은 짝짓기 할 때를 제외하면 평생을 혼자 살아요. 꿋꿋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곰을 보면서 현대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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