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서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 의혹과 첨단기술 탈취 등 중국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 논란이 커지자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각국은 화웨이 통신장비를 ‘보이콧’한 데 이어 중국 기업의 자국 첨단기업 인수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독일 정부는 19일(현지시간) 비(非)유럽 기업이 당국 승인 없이 독일의 국방·기술·언론 분야 기업 지분을 10% 넘게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규를 승인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독일은 지난해 유럽연합(EU) 비회원국 기업이 자국 전략기업의 지분을 25% 넘게 갖지 못하도록 금지한 바 있다. 중국의 자국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탈취 우려가 고조되자 한도를 더욱 조인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 정부는 이번 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최근 중국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 시도를 두 차례 저지한 것으로 미뤄볼 때 사실상 중국 견제 카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독일은 지난 7월 중국전력망공사가 독일 4대 송전회사 중 하나인 ‘50헤르츠(50Hertz)’ 합병을 시도하자 국영은행인 독일재건은행(KfW) 자금을 동원해 막았다. 8월에는 중국 기업의 독일 공작기계업체 ‘라이펠트 메탈 스피닝(Leifeld Metal Spinning)’ 인수가 “공공질서와 안보를 저해한다”며 금지했다.
다른 EU 국가들도 중국 자본의 공세를 막기 위해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월 중국 컨소시엄의 툴루즈 공항 지분 인수 시도를 막았다. 중국 관리들은 EU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외국투자자를 차별하지 말고 국제 규정을 준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EU 관리들은 중국 주장에 “중국도 외국투자자에게 자국 시장을 제대로 개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통하는 영어권 5개국 정보기관 네트워크도 중국 봉쇄를 위한 공조에 나섰다.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포함한 5개국 정보 수장은 지난 7월 캐나다 모처에서 만나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능력과 군사력 팽창 등에 관해 논의했다. 이들은 화웨이가 자국에 위협적이며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다만 화웨이 제품 사용 전면금지 여부에 대해선 국가별로 의견이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에 따른 중국과 캐나다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부인 첸웨이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고 홍콩 성도일보 등 중화권 매체들이 17일 보도했다. 왕 위원 일가는 캐나다에 호화주택 2채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5개국 정보기관 ‘파이브 아이즈’의 감시가 더욱 강화되면서 중국 고위인사들의 서방 국가 입국은 물론 이들 명의 해외자산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베이징의 한 권위 있는 인사는 이런 보도가 “순전한 낭설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고 대만 연합보가 전했다.
중국 부동산 중개업체들은 멍 부회장 체포 사건 이후 캐나다 투자 프로모션 행사를 중단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일부 투자자는 화웨이 사태 이후 캐나다 부동산 구입을 미루거나 아예 취소했다.
캐나다 관광업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막은 것과 같은 보복 조치가 캐나다에 취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캐나다 고급 의류업체 ‘캐나다 구스’는 지난 15일 베이징에 첫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인들의 불매운동 움직임을 우려해 연기했다. 중국에 억류된 전직 캐나다 외교관 마이클 코프릭의 소속 단체 국제위기그룹(ICG) 로버트 멀리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활동가뿐 아니라 사업가와 학자를 포함해 누구라도 중국에서 억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