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그리고 ‘딩동댕~’.
우리의 일요일에 유쾌함을 선사하는 국민 오락 방송. 1980년 시작돼 38년이 지난 지금껏 이어진다. 진행자 송해의 구수한 목소리는 여전한데, 그는 어느새 구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됐다. 이 프로의 광팬이었던 40대의 어여뻤던 내 어머니도 그사이 칠순 할머니가 됐다. 배불뚝이 TV는 LCD 평면TV로 바뀌었지만 일요일이면 굳은살 밴 습관처럼 TV 앞에 앉는다.
멀리 관광 갈 여유도 없는 서민들은 출연자의 우스운 몸짓에라도 박장대소하며 한 주의 노동이 준 긴장을 날렸다. 취향의 세대차는 있었다. 대개 부모는 좋아했고, 자녀는 싫어했다. 80년대 레이프 가렛에서 지금의 방탄소년단까지 팬덤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젊은 층을 환호하게 만드는 ‘힙한’ 음악은 늘 있기 마련이니. 학창 시절 나는 전국노래자랑의 ‘뽕짝스러운’ 무대가 싫었는데, 사진작가 변순철(49·사진)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2005년, 유학하고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어요. 일요일 낮에 그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있는 거 있지요. 근데 신기해요. 어릴 땐 그렇게 싫어한 프로였는데, 쑥 빨려들며 ‘와, 저거다’ 싶더라고요.”
최근 그의 개인전 ‘나의 가족’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변순철은 ‘아줌마 사진’의 오형근, ‘다문화 사진’의 김옥선과 함께 우리 시대 ‘3대 인물 사진작가’로 꼽힌다. “군대에서 엄청난 화재를 겪은 후 불현듯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는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사진학부로 편입했다. 졸업 후 그의 카메라에 담긴 피사체는 국제결혼한 남녀, 이른바 ‘짝패’ 시리즈였다.
귀국 후 새롭게 발견한 대상이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다.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나에게 천사를 보여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며 종래의 성서적 주제, 귀족의 초상화가 아닌 당대 노동자들을 화폭에 옮기는 혁명 같은 일을 했다. 작가가 어떤 대상을 선택하느냐는 중요하다. 시대를 읽어내는 작가적 촉수와 철학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민을 찍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변순철은 여가문화를 택했다. 그 여가라는 게 영화관도 아닌 안방에서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거지만, TV의 안과 밖에서는 욕망이 형성된다. 한 번쯤 멋지게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보고픈 꿈 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그런 욕망이 분출하는 현장이다. 정치인도, 교수도, 사업가도 그 무대에는 안 나온다. 떵떵거리며 살지 못하는 서민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 솜씨가 안 되면 애교를 뽐내 인기상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무대. 그리고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하며 일어나는 대리만족이야말로 전국노래자랑의 장수 비결 아닐까.
그 질펀한 에너지가 주는 맛을 변순철은 30대 시절 타국살이의 힘겨움을 통과하고서야 깨달았다. 사진 속 출연자들은 알록달록 한복 차림으로, 반짝이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엿장수나 원더우먼 복장을 하고 있다. 촌스럽단 말을 듣거나 말거나 세상 부럽지 않은 포즈를 취한다. 표정은 또 얼마나 유쾌한가.
전국노래자랑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짝패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출연자들을 무표정하게 담았다. 미국의 ‘얼굴 사진 대가’ 다이안 아버스의 자장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뉴욕의 대학을 졸업한 그는 어느 날 아버스의 사진집을 넘기다 감전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인물 사진으로 진로를 정했고, ‘짝패’ 연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피부색이 다른 남녀는 무표정하다. 인종의 용광로인 뉴욕이라지만, 여전히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사회를 살아가는 힘겨움이 묻어 있다. 이는 아버스의 사진 문법이기도 했다. 아버스는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의 이방인을 건조하게 담았다. 평론가 수전 손택이 “아름답고 못생긴 것, 중요하고 사소한 것의 차별을 평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선이다.
6년간 간헐적으로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담던 작업은 2012년을 고비로 180도 달라졌다. 사진 속 인물들이 웃기 시작했다. 몸도 웃는다. 무대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개다리춤을 추는 그들의 신명, 주목받는 데서 오는 희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남루가 기다릴 삶의 애환까지 담겨 있다.
중요한 건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무대 아래에서 재현한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웃고 있지만 희화화되지 않는다. 그의 사진이 갖는 힘이다. 무대 위에 선 것처럼 마이크 쥔 포즈를 취한 채 한껏 몸을 젖힌 한복 차림의 그녀를 보라. 건강한 삶의 에너지가 분출한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열 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취약계층 일자리는 기록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나아지지 않는 팍팍한 삶.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 사진을 보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할 판이다. 매주 녹화방송을 좇아 전국을 순회하며 찍은 그의 전국노래자랑 연작은 내년 말 회고전 형태로 나온다. ‘나의 가족’전이 열리는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일부를 만날 수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