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휩쓴 ‘박항서 신드롬’이 국내로 확산되고 있다. 박항서(59) 감독이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 우승까지 이끌어내자 베트남은 물론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도 ‘박항서 매직’으로 들썩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향수와 극적인 성공신화, 박 감독 특유의 친근한 매력이 더해져 팍팍한 현실에 카타르시스를 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5일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2018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대 0으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은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준우승,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진출에 이어 끝내 베트남에 우승컵을 안겼다. 2008년 이후 10년 만이자 베트남 축구 역사상 두 번째 우승컵이다. 박 감독이 부임한 지 1년3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이날 치러진 경기는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국 기준 SBS 18.1%, SBS스포츠 3.8%를 기록했다. 합산 시청률은 21.9%다.
스즈키컵 우승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박항서에게 훈장을 지급하라’거나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고 한국을 빛내주셨다. 살면서 한국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적은 처음”이라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박 감독에게 열광하는 분위기가 얼어붙은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박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해냈다’는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경제가 어렵고 개개인의 현실이 불안정하다보니 특정 인물의 성공신화에 더 열광한다”고 말했다.
축구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뒤 늦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비주류’의 성공에 더 몰입한다는 분석이다. 곽 교수는 “힘든 상황을 이겨낸 박 감독의 이야기가 ‘나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의 소탈한 성품과 겸손한 자세도 눈길을 끈다. 박 감독은 비즈니스석을 부상 선수에게 양보하는 등 선수를 아버지처럼 보듬는 ‘파파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스즈키컵 우승 다음날 국내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 “나는 영웅이 아니다. 결실에서 보람을 찾는 평범한 지도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자동차 업체가 우승 축하금 10만 달러를 건네자 곧바로 기부 의사를 밝혔다.
원영신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는 “성공한 뒤에도 겸손하고 친근한 박 감독의 모습에서 마음을 울리는 동질감과 매력을 느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박항서 신드롬은 국민통합, 사회통합을 이루는 스포츠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면서 “가깝지만 먼 나라였던 베트남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