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을 기반으로 번성했던 아라가야 최전성기의 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말이산 고분에서 아라가야 최초로 별자리 흔적이 나왔다. 왕성지에서는 군사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다수 발굴됐다. 이는 아라가야의 천문학 수준과 군사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라가야가 삼국에 버금가는 고대국가였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로 해석된다.
문화재청은 18일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말이산 13호 고분군 발굴 성과 현장설명회를 가졌다. 가야읍 도항리에 소재한 말이산 고분군 내 13호분은 5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봉분이 지름 40.1m, 높이 7.5m에 달하는 아라가야 최대급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100년 만에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돌덧널무덤 내부의 4개 벽면 전체가 붉은색으로 칠해진 게 확인됐다.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칠은 무덤 주인이 왕 등 특별한 지위였음을 시사한다.
무덤방은 높이 1.8m, 길이 9.1m의 당시 최대 규모 공간으로, 중앙에 시신을 안치하고 한쪽에 순장자를, 다른 쪽에 부장품을 묻도록 돼 있다. 여러 개 덮개돌을 덮었는데, 별자리 표시는 중앙 돌에서 나왔다. 덮개돌 아랫면을 쪼아서 별자리를 표시한 흔적이 총 125개나 된다. 크기와 깊이를 달리한 것은 밝기를 표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궁수자리(남두육성)와 전갈자리가 선명하고, 무수한 별은 은하수로 추정된다.
별자리는 청동기 시대 암각화나 고인돌의 덮개돌 바깥에 표시된 게 더러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무덤 안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경규 조사단장은 “별을 관측하고 구별하는 능력은 농경과 밀접하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는 무용총 각저총 등 20여개 고분벽화에 별자리가 표현돼 있고, 백제는 문헌에, 신라는 첨성대를 통해 천문 관측 능력을 입증했다”며 “아라가야 역시 삼국 못지않은 천문 관측 능력과 과학적 인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궁수자리와 전갈자리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토대로 조선 초에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표시된 중요한 별자리다.
한편 말이산 13호분과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인근 가야리의 아라가야 왕성지에서 군사시설로 보이는 건물지가 다수 발굴돼 이날 동시 공개회를 가졌다. 건물지는 모두 14동인데, 수혈건물지 12동과 고상건물지 2동이 나왔다. 구덩이를 파 지붕을 얹는 수혈건물지에서는 가야 최초로 부뚜막이 나왔고, 창고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수혈식 건물지에서는 쇠화살촉, 쇠도끼, 작은 칼 등이 수습됐다.
지상에서 떠 있는 건물인 고상건물지 중에는 망루를 갖춘 것도 있다. 기둥 구멍의 지름과 깊이가 1m나 돼 상당히 높은 건물로 추정된다. 또 다른 고상건물지는 면적이 가로 30m, 세로 6m로 가야 최대 규모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강동석 연구관은 “무기류가 나와 이곳은 왕성 안에 군사집단이 상주했던 시설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야 6국 중 하나인 아라가야는 5~6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했고, 금관가야(김해) 멸망 뒤에는 대가야(고령)와 함께 지역의 맹주 역할을 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