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도로. 달리던 차에서 바다를 응시하던 연구원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차 세우세요. 저기 보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연구원들이 급히 장비를 챙겨 차에서 내린다. 망원경으로 개체를 확인하는 연구원, 풍속계로 바람의 세기를 측정하는 연구원, GPS로 위치를 확인하는 연구원,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연구원.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반기듯 물위로 솟구친다.
‘수애기, 수어기, 곰새기.’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 말은 남방큰돌고래를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됐을 정도로 제주도 연안에는 오래전부터 돌고래가 뛰놀았다. 그러나 학계의 관심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직원들은 2007년부터 매년 봄·여름·가을·겨울 4차례 제주도를 방문해 돌고래를 관찰한다.
2018년 겨울 탐사가 시작된 첫날, 대정읍 해안도로를 따라 5㎞도 안 되는 구간에서 돌고래 무리5~6개가 수시로 목격됐다. 한 무리에 적게는 7~8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가 모여 있다. 제주도 전역에는 남방큰돌고래 120여 마리가 활동한다. 이 중에는 2013년 세간의 관심 속에 방류된 ‘제돌이’도 포함돼 있다.
김현우 고래연구센터 연구사는 “처음 이곳에서 돌고래를 봤을 때의 감동을 아직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실제 고래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만남이 저를 고래 연구의 길로 이끌었죠”라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제주도에 사는 돌고래가 큰돌고래와 다른 종임을 확인해 남방큰돌고래라는 학명을 붙인 주인공이다.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돌고래 무리지만 연구원들은 각 개체를 일일이 구별한다. 윤영글 연구원은 “방금 제돌이가 지나갔어요. 저희는 등지느러미만 보고도 돌고래를 구별해요”라고 했다. 수년간 연구의 결과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고래연구센터의 연구원은 현재 16명이다. 연구원 모두 고래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모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고래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없다. 해양생물학과에서 부수적으로 배우는 과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다수 교수는 고래가 산업적 이용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고래 연구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래에 매료된 이들에게 그런 충고는 들리지 않는다.
특별한 관측 장비 없이 뭍에서 고래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이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연안의 무분별한 개발로 남방큰돌고래의 먹이와 서식지가 점점 줄고 있다. 해양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돌고래가 있다는 건 그만큼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다솜 연구원은 “앞으로도 제주도에서 돌고래가 뛰어놀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사진·글 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