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눈 내리는 마을

사진=픽사베이


허기가 진다는 건
하얗게 달려간다는 말

다 큰 빈곳을 들추고 들어가
밤새도록
고픈 사랑을 풀어놓는 것

타인의 허기를 모른 척 휘휘
흰죽을 젓고
또 저으며
식어가는 순수의 궤적 속으로 부서지던

마침표를 띄워보는 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 한통속에도
마주침의 비문이 있을까

봄의 첫날, 밥상을 물리며 우는 것도
하얗게
달리고 있다는 말

아지랑이마다 붙들려 나온
허기의 숨찬
방울, 땀방울아

버려진 운동화 같은 겨울의 편지지 밖으로

슬픔이 반환점을 돌아 나온다
빈 그릇을 드밀고
또 드미는
은백색 스테인리스의 눈빛

풍만하게 달려온
서른의 백야

기혁의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

197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기혁은 2010년 ‘시인세계’ 신인상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가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기혁은 새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문학과지성사)에서 시간의 잔해를 추적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