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밴드 퀸이 한국 영화시장에서 놀라운 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이들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 53일 만인 23일 84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올해 개봉한 작품 중에서는 ‘신과함께-인과 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이어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이다. 역대 국내 개봉 외화로는 8위의 수익을 달성했다. 영국 대중음악의 여왕이 충무로의 왕이 된 셈이다.
음악영화만 놓고 보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단연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스웨덴 그룹 아바의 노래를 활용한 ‘맘마미아!’(457만명), 배우들의 춤과 노래가 매력적이었던 ‘라라랜드’(359만명)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보헤미안 랩소디’의 성적에는 한참 못 미친다.
갈수록 열기가 뜨거워지는 ‘퀸 신드롬’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섭섭함을 느낄 음악팬도 많을 듯하다. 한국의 음악영화가 빛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다. 1996년 윤도현과 김창완이 주연한 ‘정글 스토리’가 음악영화의 물꼬를 튼 이후 점차 그 숫자가 늘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만족할 만한 수익을 올린 사례가 전무하다 보니 시나리오가 좋다고 해도 투자자를 구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예산이 적으면 배급, 홍보에도 힘이 적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영화들은 영화관에 오랫동안 내걸리기 힘들다. 성공 모델의 부재가 악순환을 연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속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음악을 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퀸은 1970,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 젊은 세대는 대부분 퀸을 잘 모른다.
하지만 지난달 CGV 리서치센터가 관객 비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대가 28.8%로, 각각 26.8%, 27.4%를 나타낸 30,40대를 앞질렀다. 퀸의 음악이 근사하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돌아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관람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퀸이 지금도 브라운관 곳곳에 초청되는 사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성공 배경이 무엇인지 방증하고 있다. 퀸의 노래는 CF나 예능 프로그램에 수시로 깔린다. 때문에 미디어와 친숙한 젊은 세대는 가수가 누구인지는 모를지라도 노래는 알고 있다. 몇 번 들어봤던 노래가 영화에 흐르니 반갑고, 이런 친숙함은 영화에 대한 호의적인 평과 적극적인 선전으로 이어졌다.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sing-along)’ 상영이 늘어난 것도 친근함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공연 장면이 울림을 선사하는 데는 퀸 노래가 갖는 낯설지 않은 멜로디 덕분이라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대중과 가까이에서 지내는 음악이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헤미안 랩소디’로 증명하고 있다.
한동윤<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