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 있다. 미국 언론들은 그림자나 유령으로 부른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수사 내용을 누설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17일 특검으로 임명된 이후 뮬러 특검팀에서 단 한 건의 정보 유출도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뮬러 특검팀에 소속된 14명의 수사 검사들도 뮬러를 닮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을 위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가 공모·내통했다는 의혹이다. 뮬러 특검이 조만간 내놓을 수사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된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트럼프 탄핵설’까지 나온다.
그림자 또는 유령이라는 표현에는 존경심이 배어 있다. 수도사처럼 수사에 매진하는 데 대한 찬사다. 고마움도 담긴 것 같다. 연말 미국은 엉망진창이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해 연방정부 일부 기능이 정지됐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에 반발한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사표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뮬러까지 떠들었다면 정치적 혼란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뮬러는 트럼프가 “마녀사냥” “악당” 등 온갖 험한 말을 퍼부어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뮬러는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그를 심층 취재한 타임지는 뮬러에게 특검은 인생에서 세 번째로 힘든 자리일 것이라고 전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베트남전쟁이다.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한 스물네 살의 젊은이가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다. 베트콩의 공격을 받은 전우를 구하기도 했고, 자신이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동성 무공 훈장을 비롯해 여러 훈장을 받았다.
두 번째는 12년 동안 롱런했던 연방수사국(FBI) 국장 시절일 것이다. 그는 변호사-검사-변호사-검사를 널뛰는 삶을 살았다. 두 번째로 변호사를 그만두며 그는 워싱턴검찰청의 살인사건 전담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변호사 동료는 “눈에 띄지도 않고, 험한 일을 하겠다고 해 다들 깜짝 놀랐다”면서 “그러나 그것이 뮬러의 본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법무부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9·11 테러 일주일 전인 2001년 9월 4일 FBI 국장이 됐다. 타임은 뮬러가 국장일 때 많은 FBI 직원들이 그를 싫어했다고 전했다. 능력이 떨어진 직원들을 자르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성격은 급했고 고압적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외부를 멀리했고 말 대신 수사를 중시했다. 법무부 동료는 “뮬러는 제도와 절차를 중시했다”면서 “그것이 정치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보호막이었다”고 말했다.
특검을 맡으며 그는 더욱 깊이 숨었다. 비공개 회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의회에 갈 때는 카메라를 피해 뒷문으로 다녔다. 친구 중에 트럼프 측 변호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있는 공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유명 인터넷 매체 관계자가 “뮬러의 최근 사진이 없어 과거 사진을 쓰는데 신물이 난다”고 토로할 지경이다. 리온 파네타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뮬러가 내놓을 최종 수사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수사방식에 대해선 미국 국민들이 다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때 아닌 미꾸라지 논란이 빚어졌다. 청와대는 폭로를 시작했던 김태우 수사관을 미꾸라지라고 비난했다. 뮬러 특검팀에는 1년7개월 동안 단 한 명의 미꾸라지가 없었다. 뮬러와 14명의 수사검사들은 은둔과 묵언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그림자 보좌해야 할 조국 민정수석은 정치적 의미가 담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국민소통수석인지, 정무수석인지, 민정수석인지 헷갈린다. 민정수석이 의지해야 할 것은 제도와 절차이지, 페이스북은 아니다.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선글라스를 끼고 비무장지대를 시찰했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떠오른다. 이런 청와대 환경이 미꾸라지들이 서식하기에 최상의 조건은 아닌지 모르겠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